한량의 여행/13-14 나홀로 아일랜드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둘째주 시작!

정말 운좋게 수요일에 도착해서 금요일 밤에 들어갈 방을 확정했으니

이제 ID 카드와 통장을 발급 받고, 일을 본격적으로 구해야 했다.

주말에 미리 영문 이력서(CV)를 작성해두고 둘째주부터 더블린 거리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사진은 더블린 중심에서 본 스파이어!

지난 포스트에서 찍었던 사진보다 훨씬 더 높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에 비해 건물들의 높이가 낮기 때문에 스파이어는 더블린 어느 곳에서나 눈에 띈다. 







이력서를 돌리러 제일 먼저 간 곳은 내가 살게 될 루칸시의 동네 주변이었다.

일을 구하게 된다면 매일 집에서 출퇴근하게 될테니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알아보고 싶었다.


이 사진에 보이는 페이힐은 거의 내가 살던 동내의 상징 같은 곳으로, 레스토랑 겸 펍이었다.

버스 정류장이 여기 바로 앞에 있고, 양쪽으로 대형마트인 리들과 유로스파가 있어서 이 동네에 때 매일 아침저녁으로 지나는 곳이다. 


처음으로 이력서를 내는 것이라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가 매니저를 찾았지만 오늘은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사람 구하냐고 물어보자 직원이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매니저한테 물어보라고 얘기했다. 

우선 이력서를 주고 매니저가 언제 나오냐고 물어봐서 그때 다시 오기로 했다.


여기 페니힐은 나를 두번이나 더 오게 했지만 결국 여기서 일을 구하지는 못했다. ㅠㅠ 







마침 동네에 온 김에 내가 살게 될 집앞까지도 다시 한번 찾아가 길을 익혔다.

여기 대문으로 들어가서 유리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면 있는 작은 방, 저기 저 작은 창문이 내 방이었다.

이 집에 들어가기로 확정은 됐지만, 들어가는 날짜는 열흘~2주 정도로 미뤄졌었다.

원래 이 집엔 한 가족(4명)이 살고 있었는데 이혼을 하게 되어 부인과 딸이 나가서 살게 되고, 그래서 남는 방을 월세를 주는 거였다.

거기에 내가 첫 세입자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4살짜리 딸이 쓰던 방에...!(그래서 핑크 천지, 이전 포스트 참고)


게다가 집주인 아저씨는 폴란드인이었고 고3인 아들은 중학교때까지 호주에서 자란 호주인이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정리도 할겸 알아보기도 할겸 2주간 여행을 갔다 오게 되었고 그래서 내 입주일이 늦춰진 것이다.


나무 때문에 사진에선 집이 잘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방을 구했다는 안도감과 기쁜 마음을 가지고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갔다.







첫번째 이력서를 돌린 페니힐을 시작으로 나는 매일매일 아침에 나가 이력서를 출력해서,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더블린 시내의 모든 거리를 하나하나씩 돌아다니며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 펍, 카페, 스낵바 등 온갖 가게마다 들어가 이력서를 뿌렸다.


CV 받는 중이라고 밖에 써붙여진 가게들도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은 현재 사람을 구하지 않는 가게들이었다.

사람도 필요하지 않은 가게에 대뜸 들어가 매니저를 찾고 내 어필을 하며 생글생글 웃는 것은 두꺼운 철판과 용기가 필요했다.

조금 떨리기도 했지만, '해야 할 일은 그냥 하면 되고 문제는 두려움이다'라는 문구를 되새기며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은 일을 반복했다.

수십장 수백장을 돌려도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자 그때서야 비로소 조금씩 '청년실업'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실감이 났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아직 취업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뉴스에서 청년실업이 문제라고 해도 그게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 막상 나에게 있는 돈이 한정 되어있고, 벌지 않으면 그 돈은 곧 바닥나게 되어있고, 그러면 난 기본적인 생활은 커녕 방세도 내지 못하게 되어 더이상 여기서 살 수 없어진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청년실업이라는 말이 가진 무게를 느끼게 되었다. 


사진에 보이는 젖은 바닥처럼 이력서를 돌리는 동안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시간이 많았다.

거친 날씨를 뚫고 하루에도 수십개의 가게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어쩌다 낮에 간단한 점심을 사가지고 호스텔 방에 돌아가 혼자 먹을 때면

모두들 관광하러 나가 텅빈 대낮의 도미토리 방 작은 침대에 앉아 말 그대로 눈물 젖은 빵을 먹기도 했다.






이력서를 뿌리러 돌아다니면서 놀랐던 점은, 아일랜드의 펍들은 오전~낮부터 열어서 레스토랑 같은 역할도 겸한다는 점이었다.

전 세계 어딜 가나 '아이리쉬 펍'이 있을 정도로 아일랜드의 펍 문화는 독보적이고 유명하다.

펍이라고 하면 술집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우리나라의 보통 술집처럼 늦은 오후나 저녁부터 영업을 시작할 줄 알았는데, 한국인 이상으로 술을 좋아하는 아일랜드에서는 낮부터 펍에서 한잔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대낮에 이력서를 돌리러 들어가도 펍마다 사람이 꽉 차 있었고 얼굴이 벌게진 사람들이 있었다.


어학연수나 유학을 온 한국 학생들은 보통 아일랜드에 오자마자 새로 사귄 친구들과 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나는 아일랜드 생활 초반엔 이력서 돌리러 대낮에 펍에 들어간 경험 밖에 없었다. 





내가 첫 일주일동안 지냈던 호스텔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스페인에서 온 여행자 친구들은 매일 저녁 일찍 돌아와 3~4시간 잠을 자고 다시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놀러나가 새벽에 들어왔고, 아침에 조식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가면 다른 유럽지역에서 온 유학생들이 집을 구하고 싶은데 못 구하고 있다는 등의 정착에 관련한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저렴한 호스텔이어서 젊은 사람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여행을 하러 와서 많이들 묵고 계셨고, 나처럼 그냥 일을 구하며 살기 위해 아일랜드에 와 잠깐 호스텔에 머물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 중에 프레드라는 흑인 친구와 사이프러스에서 온 알리 아저씨랑 친구가 됐다.

알리 아저씨는 사이프러스에서 투잡을 뛰는 요리사였는데 아일랜드에서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온 경우였다.

내가 처음에 호스텔 일주일치만 예약하고 왔는데 10일 가량을 더 머물러야 해서 같은 호스텔의 다른 방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그때 같은 방에서 만난 아저씨이다.

알리 아저씨는 아주 사교성이 좋아서 더블린에 사는 친구도 금방 사귀어 집에도 놀러가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 아저씨는 나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더니, 내가 일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갑자기 자기 친구가 좋은 정보를 줄 수 있다며 같이 가보겠냐고 물었다.

원래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면 안 되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나 겁이 없었고 알리 아저씨가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여서 만난지 1~2시간도 되지 않아서 바로 아저씨를 따라 나갔다. 


아저씨를 따라서 도착한 것은 더블린 시내에 있는 한 작은 PC방이었고, 아저씨의 친구는 그곳에서 일하는 서아시아 사람이었다.

그 친구에게 아저씨가 내 얘기를 말해주자 더블린 '커리어 주'라는 채용 박람회 정보를 주고 사전등록을 도와주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만 만나다니!

해외 생활 할 때에는 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더니, 나는 진짜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맑은 날에 나는 들뜬 마음으로 더블린 커리어주에 참석하러 갔다. 

매일 이력서를 돌리며 거닐던 음식점, 카페가 즐비한 북적북적한 거리가 아니라 그 반대쪽으로(바다 방향) 조금 더 가니까 아주 한적하고 쾌적한 거리가 나왔다. 예쁜 다리들도 있었다. 






원래는 거지 같은 미친 날씨를 자랑하는 아일랜드이지만, 내가 도착한 초반에는 이렇게 멋진 날씨를 선사해주었다.

9월의 따스한 가을 햇볕과 예쁘게 물든 낙엽을 보며 오랜만에 감상에 젖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냥 새로운 곳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렇게 예쁘고 청명한 하늘과 초록초록한 나무들을 보니 그동안 고생하며 지친 마음이 안정되고 힐링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몰랐던 나의 도시 취향을 아일랜드에서 발견했는데, 나는 복잡하고 좁은 골목들이나 빽빽하게 무언가가 들어선 곳보다는 더블린처럼 하늘도 거리도 탁 트여있는 시원시원한 곳에 더 끌렸다. 





여기는 하프모양의 다리!

사람들이 관광을 하고 많이 모이는 중심지에 비해 이곳은 현대적인 건물들이 좀더 많이 있었다.

그래도 건물들의 높이는 모두 고만고만 했기 때문에 이렇게 멋진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게 무척 좋았다.






한창 콧노래를 부르며 걷다보니 더블린 커리어 주가 열리는 건물이 보였다.

건물 디자인부터 뭔가 흥미로웠다ㅋㅋㅋ





앞서 말했듯이 이전에 취업에 대해 별 인식이 없었던 나에게 외국의 채용박람회는 정말 색다른 이벤트였다.

솔직히 나는 아직 대학 졸업도 안 한 상태이고 영어도 유창하게 하지 못하고, 아일랜드도 그냥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온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일을 구하겠다!'는 헛된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아일랜드의 채용시장은 어떻고, 여기는 어떤 기업에서 사람들을 뽑는지, 그리고 혹시나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행사에 참석했다. 





정말 놀랐던 점은 이 행사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는 것이다.

이 사진에서는 다 보이지 않지만 엄청나게 넓은 행사장 내부에는 정말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 생애 첫 채용박람회 방문 경험이었다.





아일랜드가 유럽의 IT 강국이라더니 정말 박람회에 참가한 많은 기업들 중에서도 미디어 관련 기업들이 유독 많이 보였다.

내 전공이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이라서 더 이런 기업들이 눈에 들어온 점도 있지만 정말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들이 참석해서 인재들에게 채용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아일랜드 지사에서 사람을 뽑기도 하고, 아일랜드에서 뽑아서 영국지사에서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절실히 일을 구하는 '을'의 입장이 아니라 그냥 행사를 구경하러 온 관람객의 입장으로 하루를 보냈더니 기분전환도 되고 상쾌했다.


채용박람회의 엄청난 열기를 느끼면서 '아일랜드에서 일을 구하는 것은 나 같은 동양인 여자애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한결 짐을 덜 수 있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기에.. 






2013년 9월, 아일랜드 생활 둘째주

또 한주를 무사히 지내고 있었다.

첫주만큼 모든 게 마냥 새롭고 신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 정면으로 부딪치고 깨져가면서 나름의 맷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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