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의 여행/13-14 나홀로 아일랜드



2013년 9월 아일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이후 내가 더블린에서 가장 좋아하게 된 곳은 바로 스티븐스 그린!

도심 한복판에 있는 공원인데도 넓고 한적하고 아름다워서 자꾸자꾸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오고 싶은 곳이다.





한국에서 서울과-경기도를 오가며 생활하던 나에게 공원이란 선유도와 여의도공원, 올림픽 공원 정도..?!

그곳들도 물론 좋지만, 더블린의 스티븐스 그린에서 깜짝 놀랐던 건 청둥오리와 갈매기, 심지어 백조들까지 수없이 노닐고 있었다는 것이다.

스티븐스 그린 옆에는 큰 쇼핑센터와 온갖 호텔들이 줄지어 있을 정도로 번화한 도심 한복판이었지만 공원 안은 놀랄만큼 평화로웠다.





워낙 초록초록 한 것을 좋아하고, 여유롭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걸 즐기는 나는 첫 방문 이후 스티븐스 그린에 완전히 빠지게 되었다.

이날은 더블린 생활 둘째주 주말!

평일엔 열심히 일을 구하러 돌아다녔으니 주말에라도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쉬고 싶어서 느릿느릿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 일 ㅠㅠ 

미친 날씨를 자랑하는 아일랜드 답게 공원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청둥오리 너무 귀여움 ㅠㅠ





갑작스런 비에 오리도 놀라고 갈매기도(맞나??) 놀라고 공원에 산책나온 아이와 어른들도 나무 아래로 비를  피하기 바빴다.

이 사진을 찍고 나도 얼른 카메라가 젖을까 품안에 집어 넣고 우산을 폈다.

초록초록한 풍경 속에서 맞는 비는 바쁜 도시생활에서 비를 만났을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나무 아래 한 자리에서 가만히 서서 빗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냥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비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비가 완전히 그치고 나는 다시 우산을 접고 산책을 시작했다.

비에 젖은 잎들 덕분에 한층 녹음이 짙어진 모습이었다.





조금 걷다보니 잔디 밭에서 놀고 있는 백조가 보였다.

물에서는 우아하기 그지없지만 물 밖에선 뒤뚱뒤뚱 오리처럼 걷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리고 저 새하얀 깃털도 너무 예뻤다.





물속에선 이렇게나 우아한 백조님ㅋㅋㅋ

그냥 이렇게 동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이날 이후로 거의 매일 점심을 싸가지고 스티븐스 그린에 갔다.

일을 구하는 동안엔 아침에 도시락을 싸서 나간 뒤 이력서를 돌리다가 스티븐스 그린에 앉아 점심도 먹고 책도 좀 읽다가 다시 이력서를 돌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일들이 반복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그대로 백조... 저 백조와 비슷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물 위에 한가롭게 떠있는 모습 아래에는 발로 끊임없이 헤엄을쳐야 할테니.. 스티븐스 그린에 앉아 한가롭게 책을 읽고 볕을 쐬며 여유를 즐기는 것 같아 보이는 나도 실은 비맞고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일을 구하고 있는 처지였으니 정말 말 그대로 백조... 허허허





그래도 매일 지친 몸과 불안함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곳은 이곳 뿐이었다.

내사랑 스티븐스 그린♡_♡





백조가 있는 곳을 지나 걷다보면 이렇게 어린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평평한 잔디밭과 놀이터가 나온다.

평소 같았으면 놀이터가 아이들로 가득 차있었을텐데, 이때는 비가 온 직후라서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빗방울 맺힌 잔디밭 위를 총총 뛰어다니는 까치만 놀고 있었다.

놀이터 앞에서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것처럼 까치 뒷꽁무늬를 쫒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놀았다ㅋㅋ





나뭇잎 위에는 송글송글 맺혀있는 빗방울들을 보니 다시금 좀전의 비가 떠올랐다.

멀쩡한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지지 않나, 그리고 또 금새 그치지 않나 더블린의 날씨는 정말 종잡을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햇빛이 들기 시작했다.

넓은 공원은 산책로가 잘 짜여져 있어서 걷는 동안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비온 직후라 사람이 없어 한적한 게 마음에 들었다.




바닥은 온톤 젖었지만 하늘에선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완전히 맑게 갠 이후에는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화창한 날씨가 됐다.

정말 미친 날씨가 아닐 수 없다.





꽃잎에 맺혀있는 물방울이 없으면 마치 온종일 맑았던 것처럼 꽃들이 예쁘게 활짝 피어 빛을 받고 있었다.





좋아진 날씨에 따라 덩달아 기분 좋아진 나는 마치 등산와서 신이난 아저씨처럼 룰루랄라 꽃 사진을 찍어댔다.

사진첩을 보니 웬 꽃을 그렇게 클로즈업 해서 찍었는지ㅋㅋㅋ





계속 서서 산책하느라 다리가 조금 아파져서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미 벤치에 물기는 거의 없었다.

평소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 나에게, 한국에서 친구가 그래도 필요할 거라며 텀블러를 선물로 줬었다.

산책하며 마시려고 숙소에서 따뜻한 차를 텀블러에 담아왔었는데 아직 나온지 오래되지 않아 따뜻한 상태였다.





벤치에 앉은 상태 그대로 정면을 찍은 사진!

드넓은 공원 뒤로 펼쳐진 커다란 하늘이 참 예뻤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스티븐스 그린!!!





이렇게 아일랜드에서 또 한주가 가고 있었다.

난생 처음 해외로 나가 여행도 아니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 했던 나에게 스티븐스 그린은 그 어느 것보다도 위안이 되어 주었다.

낯선 도시였던 더블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생겼다.


2013년 9월 중순, 먀냥 신기하고 새로웠던 더블린에 애정이 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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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의 여행/13-14 나홀로 아일랜드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둘째주 시작!

정말 운좋게 수요일에 도착해서 금요일 밤에 들어갈 방을 확정했으니

이제 ID 카드와 통장을 발급 받고, 일을 본격적으로 구해야 했다.

주말에 미리 영문 이력서(CV)를 작성해두고 둘째주부터 더블린 거리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사진은 더블린 중심에서 본 스파이어!

지난 포스트에서 찍었던 사진보다 훨씬 더 높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에 비해 건물들의 높이가 낮기 때문에 스파이어는 더블린 어느 곳에서나 눈에 띈다. 







이력서를 돌리러 제일 먼저 간 곳은 내가 살게 될 루칸시의 동네 주변이었다.

일을 구하게 된다면 매일 집에서 출퇴근하게 될테니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알아보고 싶었다.


이 사진에 보이는 페이힐은 거의 내가 살던 동내의 상징 같은 곳으로, 레스토랑 겸 펍이었다.

버스 정류장이 여기 바로 앞에 있고, 양쪽으로 대형마트인 리들과 유로스파가 있어서 이 동네에 때 매일 아침저녁으로 지나는 곳이다. 


처음으로 이력서를 내는 것이라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가 매니저를 찾았지만 오늘은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사람 구하냐고 물어보자 직원이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매니저한테 물어보라고 얘기했다. 

우선 이력서를 주고 매니저가 언제 나오냐고 물어봐서 그때 다시 오기로 했다.


여기 페니힐은 나를 두번이나 더 오게 했지만 결국 여기서 일을 구하지는 못했다. ㅠㅠ 







마침 동네에 온 김에 내가 살게 될 집앞까지도 다시 한번 찾아가 길을 익혔다.

여기 대문으로 들어가서 유리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면 있는 작은 방, 저기 저 작은 창문이 내 방이었다.

이 집에 들어가기로 확정은 됐지만, 들어가는 날짜는 열흘~2주 정도로 미뤄졌었다.

원래 이 집엔 한 가족(4명)이 살고 있었는데 이혼을 하게 되어 부인과 딸이 나가서 살게 되고, 그래서 남는 방을 월세를 주는 거였다.

거기에 내가 첫 세입자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4살짜리 딸이 쓰던 방에...!(그래서 핑크 천지, 이전 포스트 참고)


게다가 집주인 아저씨는 폴란드인이었고 고3인 아들은 중학교때까지 호주에서 자란 호주인이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정리도 할겸 알아보기도 할겸 2주간 여행을 갔다 오게 되었고 그래서 내 입주일이 늦춰진 것이다.


나무 때문에 사진에선 집이 잘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방을 구했다는 안도감과 기쁜 마음을 가지고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갔다.







첫번째 이력서를 돌린 페니힐을 시작으로 나는 매일매일 아침에 나가 이력서를 출력해서,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더블린 시내의 모든 거리를 하나하나씩 돌아다니며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 펍, 카페, 스낵바 등 온갖 가게마다 들어가 이력서를 뿌렸다.


CV 받는 중이라고 밖에 써붙여진 가게들도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은 현재 사람을 구하지 않는 가게들이었다.

사람도 필요하지 않은 가게에 대뜸 들어가 매니저를 찾고 내 어필을 하며 생글생글 웃는 것은 두꺼운 철판과 용기가 필요했다.

조금 떨리기도 했지만, '해야 할 일은 그냥 하면 되고 문제는 두려움이다'라는 문구를 되새기며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은 일을 반복했다.

수십장 수백장을 돌려도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자 그때서야 비로소 조금씩 '청년실업'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실감이 났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아직 취업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뉴스에서 청년실업이 문제라고 해도 그게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 막상 나에게 있는 돈이 한정 되어있고, 벌지 않으면 그 돈은 곧 바닥나게 되어있고, 그러면 난 기본적인 생활은 커녕 방세도 내지 못하게 되어 더이상 여기서 살 수 없어진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청년실업이라는 말이 가진 무게를 느끼게 되었다. 


사진에 보이는 젖은 바닥처럼 이력서를 돌리는 동안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시간이 많았다.

거친 날씨를 뚫고 하루에도 수십개의 가게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어쩌다 낮에 간단한 점심을 사가지고 호스텔 방에 돌아가 혼자 먹을 때면

모두들 관광하러 나가 텅빈 대낮의 도미토리 방 작은 침대에 앉아 말 그대로 눈물 젖은 빵을 먹기도 했다.






이력서를 뿌리러 돌아다니면서 놀랐던 점은, 아일랜드의 펍들은 오전~낮부터 열어서 레스토랑 같은 역할도 겸한다는 점이었다.

전 세계 어딜 가나 '아이리쉬 펍'이 있을 정도로 아일랜드의 펍 문화는 독보적이고 유명하다.

펍이라고 하면 술집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우리나라의 보통 술집처럼 늦은 오후나 저녁부터 영업을 시작할 줄 알았는데, 한국인 이상으로 술을 좋아하는 아일랜드에서는 낮부터 펍에서 한잔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대낮에 이력서를 돌리러 들어가도 펍마다 사람이 꽉 차 있었고 얼굴이 벌게진 사람들이 있었다.


어학연수나 유학을 온 한국 학생들은 보통 아일랜드에 오자마자 새로 사귄 친구들과 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나는 아일랜드 생활 초반엔 이력서 돌리러 대낮에 펍에 들어간 경험 밖에 없었다. 





내가 첫 일주일동안 지냈던 호스텔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스페인에서 온 여행자 친구들은 매일 저녁 일찍 돌아와 3~4시간 잠을 자고 다시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놀러나가 새벽에 들어왔고, 아침에 조식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가면 다른 유럽지역에서 온 유학생들이 집을 구하고 싶은데 못 구하고 있다는 등의 정착에 관련한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저렴한 호스텔이어서 젊은 사람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여행을 하러 와서 많이들 묵고 계셨고, 나처럼 그냥 일을 구하며 살기 위해 아일랜드에 와 잠깐 호스텔에 머물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 중에 프레드라는 흑인 친구와 사이프러스에서 온 알리 아저씨랑 친구가 됐다.

알리 아저씨는 사이프러스에서 투잡을 뛰는 요리사였는데 아일랜드에서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온 경우였다.

내가 처음에 호스텔 일주일치만 예약하고 왔는데 10일 가량을 더 머물러야 해서 같은 호스텔의 다른 방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그때 같은 방에서 만난 아저씨이다.

알리 아저씨는 아주 사교성이 좋아서 더블린에 사는 친구도 금방 사귀어 집에도 놀러가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 아저씨는 나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더니, 내가 일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갑자기 자기 친구가 좋은 정보를 줄 수 있다며 같이 가보겠냐고 물었다.

원래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면 안 되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나 겁이 없었고 알리 아저씨가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여서 만난지 1~2시간도 되지 않아서 바로 아저씨를 따라 나갔다. 


아저씨를 따라서 도착한 것은 더블린 시내에 있는 한 작은 PC방이었고, 아저씨의 친구는 그곳에서 일하는 서아시아 사람이었다.

그 친구에게 아저씨가 내 얘기를 말해주자 더블린 '커리어 주'라는 채용 박람회 정보를 주고 사전등록을 도와주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만 만나다니!

해외 생활 할 때에는 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더니, 나는 진짜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맑은 날에 나는 들뜬 마음으로 더블린 커리어주에 참석하러 갔다. 

매일 이력서를 돌리며 거닐던 음식점, 카페가 즐비한 북적북적한 거리가 아니라 그 반대쪽으로(바다 방향) 조금 더 가니까 아주 한적하고 쾌적한 거리가 나왔다. 예쁜 다리들도 있었다. 






원래는 거지 같은 미친 날씨를 자랑하는 아일랜드이지만, 내가 도착한 초반에는 이렇게 멋진 날씨를 선사해주었다.

9월의 따스한 가을 햇볕과 예쁘게 물든 낙엽을 보며 오랜만에 감상에 젖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냥 새로운 곳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렇게 예쁘고 청명한 하늘과 초록초록한 나무들을 보니 그동안 고생하며 지친 마음이 안정되고 힐링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몰랐던 나의 도시 취향을 아일랜드에서 발견했는데, 나는 복잡하고 좁은 골목들이나 빽빽하게 무언가가 들어선 곳보다는 더블린처럼 하늘도 거리도 탁 트여있는 시원시원한 곳에 더 끌렸다. 





여기는 하프모양의 다리!

사람들이 관광을 하고 많이 모이는 중심지에 비해 이곳은 현대적인 건물들이 좀더 많이 있었다.

그래도 건물들의 높이는 모두 고만고만 했기 때문에 이렇게 멋진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게 무척 좋았다.






한창 콧노래를 부르며 걷다보니 더블린 커리어 주가 열리는 건물이 보였다.

건물 디자인부터 뭔가 흥미로웠다ㅋㅋㅋ





앞서 말했듯이 이전에 취업에 대해 별 인식이 없었던 나에게 외국의 채용박람회는 정말 색다른 이벤트였다.

솔직히 나는 아직 대학 졸업도 안 한 상태이고 영어도 유창하게 하지 못하고, 아일랜드도 그냥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온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일을 구하겠다!'는 헛된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아일랜드의 채용시장은 어떻고, 여기는 어떤 기업에서 사람들을 뽑는지, 그리고 혹시나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행사에 참석했다. 





정말 놀랐던 점은 이 행사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는 것이다.

이 사진에서는 다 보이지 않지만 엄청나게 넓은 행사장 내부에는 정말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 생애 첫 채용박람회 방문 경험이었다.





아일랜드가 유럽의 IT 강국이라더니 정말 박람회에 참가한 많은 기업들 중에서도 미디어 관련 기업들이 유독 많이 보였다.

내 전공이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이라서 더 이런 기업들이 눈에 들어온 점도 있지만 정말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들이 참석해서 인재들에게 채용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아일랜드 지사에서 사람을 뽑기도 하고, 아일랜드에서 뽑아서 영국지사에서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절실히 일을 구하는 '을'의 입장이 아니라 그냥 행사를 구경하러 온 관람객의 입장으로 하루를 보냈더니 기분전환도 되고 상쾌했다.


채용박람회의 엄청난 열기를 느끼면서 '아일랜드에서 일을 구하는 것은 나 같은 동양인 여자애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한결 짐을 덜 수 있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기에.. 






2013년 9월, 아일랜드 생활 둘째주

또 한주를 무사히 지내고 있었다.

첫주만큼 모든 게 마냥 새롭고 신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 정면으로 부딪치고 깨져가면서 나름의 맷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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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의 여행/13-14 나홀로 아일랜드



아무 연고도 없이 '일주일 호스텔 예약확인서'과 '두달치 생활비(230만원)'만 달랑 들고 아일랜드로 떠났기에, 도착하면 가장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일랜드에서 지낼 집을 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숙소에 짐을 풀자 마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는 내가 첫 일주일동안 머물렀던 숙소 근처의 사거리! 이 횡단보도를 얼마나 많이 지나다녔는지 모른다.

여기 횡단보도만 건너서 몇 블록 가면 바로 더블린 시내의 중심지 오코넬스트릿이 나온다.


1년 중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이 거의 300일 가까이 된다는 아일랜드지만, 내가 처음 도착했을 때는 햇빛 쨍쨍 화창한 날씨였다.

그래서 나에게 아일랜드는 (아무리 비를 많이 맞고 돌아다녔어도) 처음의 화창하고 맑은 따뜻한 인상이 강하다.







 건물들의 높이가 낮은 더블린의 어디서든 볼 수 있다는 '스파이어'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이 솟아있다. 

친구와 약속을 정할 때 "스파이어 앞에서 만나~"라고 할 정도로 더블린에서 지낸다면 자주 마주치게 되는, 더블린의 상징 같은 존재다.


출국 하루이틀 전 한국에서 미리 'daft.ie'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적절한 가격대의 싱글룸 몇군데를 골라 노트에 적어왔기 때문에, 도착 첫날 3(three) 통신사 매장에서 핸드폰 먼저 개통하고, 맥도날드에 들어가 첫 끼니를 때우며 집주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아마 대뜸 전화해 "daft.ie에서 봤는데, 방 보러 가도 될까요? 저 방 구하는 중이에요~"라고 떠듬떠듬 유창하지 않은 영어 실력으로 말을 하는 동양인 여자애가 신기하기도 했을 것 같다. 실제로 몇 군데에서는 거절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다행히 바로 다음날 집을 보러 오라고 약속을 잡은 집도 있었다.


핸드폰 개통과 방 알아보는 약속 모두 무사히 해내고, 안도의 마음으로 숙소 근처 마트에서 간단한 장을 봐서 들어왔다.

알찬 첫날을 보낸 것 같다.






아일랜드에서의 둘째날!

집 보러 가는 약속이 오후에 있었기 때문에 느즈막히 일어나 마트 구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시간 내로 집을 보러 올 수 있냐는 전화가 왔다.

계산대 앞에 서 있던 나는 그대로 구매한 물건(1.5L 생수병, 빵, 토마토 등...)을 품에 안고 투어리스트 오피스에 뛰어갔다.

당시엔 구글지도에서 아일랜드 대중교통 길찾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주소 하나만 가지고 혼자 집을 보러 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투어리스트 오피스에 주소를 보여주며 어떻게 가야하냐고 물어보자 친절하게 지도를 펼쳐서 정류장 위치와 타야 하는 버스 번호, 내려야 하는 정류장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무사히 (허둥대긴 했지만) 더블린의 이층버스를 처음으로 타볼 수 있었다:)

이층에서 보는 창밖 풍경은 늘 타던 일층에서 보는 모습과 전혀 달랐다.

우선 전면이 탁 트여있어서 시원하고 안정감이 들었다. 






첫번째 집을 우여곡절 끝에 보고 나서(같은 이름이라도 스트릿, 애비뉴 등등 여러 골목들이 있었기 때문에 길을 헤맸다ㅠ) 숙소에 다시 돌아가 무거운 생수병을 갖다 놓고, 다시 나와서 두번째 집을 보러 갔다.

이번에도 투어리스트 오피스에 들러 타야하는 버스 정보를 듣고 버스에 탔는데 운전기사가 정류장 이름을 잘 모른다고 했다.

뒤에서 듣고 있던 다른 승객이 내릴 곳을 알려줘서 겨우 내릴 수 있었다. 


여기는 '루칸'이라는 이름의 도시, 더블린 주 안에 있고 더블린 시와 붙어있다.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근처의 잔디밭(나중에 들으니 이 동네에선 그린에어리어라고 부른다더라)에서 쉬고 있었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 하늘이 탁 트여있는 풍경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동네도 아기자기하게 예쁘고 깨끗해서 집을 보기 전부터 왠지 끌리는 듯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집 주인이 알려준 [번호 - 길이름] 으로 갔는데 그 집은 다른 집이었다. 

핸드폰 배터리는 꺼져서 집주인과 연락을 할 수 없었어서 마침 골목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말을 걸고 있었다.

그때 어느 집에서 한 아이의 어머니인 것처럼 보이는 여자가 나와 거기 스트레인져 뭐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분께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흔쾌히 집 안에 들어와 전화를 쓸 수 있게 해주었고, 집주인과 통화를 해서 정확한 집 주소를 알아낼 수 있었다.

정확한 집 주소는 [번호 - 길이름 GROVE] 였는데, 나는 [번호 - 길이름 AVENUE] 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두번째로 보러간 방은 핑크빛 벽지로 둘러싸인 아기자기한 방이었다.

동네부터 마음에 들었던 상태에서 커튼이 하늘거리는 방을 보니 이곳에서 꼭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핑크색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데 이상하게 끌렸다.

바로 오전에 보고 왔던 집이 약간 지저분하고 오래돼 보여서 더욱 비교가 되기도 했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서 집주인 아저씨가 피자를 구워주었다.

함께 피자를 먹으며 방에서는 얼마동안 지내고 싶은지, 월세를 낼 수 있는 여력이 되는지 등을 물어봐 눈을 반짝이며 강력하게 어필을 했다.

이때 처음 안 건데, 내가 방을 둘러보고 마음에 든다고 해서 계약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이미 나 말고도 그 방을 보러 온 사람이 열명 가까이 된다고 했다.

물론 내 마음에도 들어야 하지만, 집주인의 마음에도 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집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겠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절실한 심정으로 열심히 어필했다.


꼬박 하루를 기다려서 다음 날(셋째날) 밤에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그 방에 들어가서 살아도 된다는 연락이었다.

엄청난 시험에 합격한 것처럼 기뻤다!!

(하지만 그 집 사정 때문에 그 방으로 이사가는 것은 2주 뒤가 되었다...ㅠㅠ)






어쨌든!

방을 구하고 마음에 안정을 찾은 뒤, 아일랜드에서 맞는 첫주말에 비행기에서 만났던 한국 친구(지난 포스트에서 언급)와 더블린 구경을 했다.

그 친구는 어학원을 통해서 왔기 때문에 이미 도착하자마자 더블린 시내 구경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며칠간 내내 이리저리 모르는 거리를 헤매며 뛰어다녔기 때문에 더블린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핸드폰 개통하기, 집 구하기라는 미션을 성공적으로 클리어한 후의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사진은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 여기에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도서관이 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아일랜드를 떠날 때까지 그 도서관은 가보지 못했다... ㅠㅠ 너무 가까운 곳이라서 오히려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나보다..... 한국에 돌아와서 하는 뒤늦은 후회 





한번 투어를 했다고 길을 잘 아는 친구 덕분에 더블린 여기저기를 알차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여기는 스티븐스 그린(St. Stephen's Green Park)이다.

(무료 영어 클래스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 교사가 스티븐스 그린이라고 발음하더라..)


더블린은 바다와 맞닿아있는 도시라서 그런지 갈매기 같은 새들이 무척 많다.

호스텔에서 아침에 끼룩끼룩 새 소리 때문에 깨어날 정도였다.


이 공원에 이때 처음 간 이후로 너무 마음에 들어서, 더블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신구의 조화 찰칵!

더블린에서는 말도 많이 키운다고 한다.

(루칸에 살면서는 종종 도로에서 말 똥을 보기도 했다...)


여기는 물론 시내이기 때문에 관광 목적으로 키우는 말이 대부분이다.

한밤중에 탬플바 근처에서 경찰복 같은걸 입은 사람들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걸 보기도 했다. 허허.






마구마구 돌아다니다가 중국어가 써져있어서 우연히 들어간 아시안 푸드 마켓에 한국 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익숙한 우리나라 제품들 밑에 유로로 가격이 쓰여있어서 묘한 기분과 함께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 있을 땐 한국 음식을 해외에서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막상 나가보니 한인마트나 아시안 마켓이 있으면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가격이 비싸서 그렇지..ㅎㅎ





정처 없이 걷다가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 안에서 오래된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는 곳에 들어갔다.

오래된 장난감, 그림, 장신구 등 다양한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참 분위기가 있어서 천천히 구경을 했다.






언제 지어진 건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짙은 붉은색 외벽의 건물이 웅장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유럽에 있긴 있구나..!





한참을 걸으며 구경하다가 잠시 쉴겸 카페에 들어갔다.

라떼를 시켰는데 아기자기한 라떼아트와 함께 나왔다.

유럽의 IT 강국인 아일랜드 답게 카페 안에서 와이파이도 되고, 인테리어도 예쁘고, 창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낯설어서 모든 게 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때가 2013년, 당시 한달정도 뒤에 런던 여행을 갔었는데 이때만해도 들어가는 카페마다 와이파이가 안 된다고 해서 황당했었다...)





수요일에 도착해서 주말까지...정신없으면서도 설렘과 기쁨, 두근거림이 가득했던 아일랜드에서의 첫주가 지났다.

다른 이들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아일랜드의 첫인상은 모르는 사람도 기꺼이 도와주는 '친절'과 탁트이고 청명한 '하늘', 그리고 이에 걸맞게 깨끗한 도로, 옛 정취와 현대가 공존하는 '조화'였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지만, 어느 것도 두렵지 않았다. 안정감을 주는 도시였다.


이 당시에는 '이 모습이 유럽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아일랜드 더블린이 전형적인 유럽 도시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추측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유럽의 여러 나라, 도시들을 여행하고나니 아일랜드만의 매력과 개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돌아갈 수 었는 상태였기에 아일랜드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2013년 9월, 이렇게 아일랜드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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