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의 여행/13-14 나홀로 아일랜드



유러피안 도시에 있는 공원 중 가장 규모가 큰 아일랜드 더블린의 피닉스 파크(Phoenix Park)!

지난 포스트에서 길을 잃고 우연히 장미꽃 가득한 메모리얼 가든에서 놀다가 정신 차리고 피닉스 파크까지 걸어왔다.

다른 사람들은 피닉스 파크를 갈 때 더블린에서부터 출발해서 나와 다른 루트로 가기 때문에 사슴을 본적 없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루칸에서 출발하여 엉뚱한 곳에 내려 지도를 보고 내 마음대로 길을 찾아간 결과 공원 안으로 쭈~욱 들어오자 마자 사슴 떼와 만날 수 있었다.




피닉스 파크는 유럽 도시에서 가장 크다는 명성처럼 끝없이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내가 이날 다녀온 부분은 정말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 한없이 펼쳐진 잔디 공원은 처음 보았다.




심지어 이곳에는 사슴들이 울타리도 없이 그냥 방목되어 있었다.

누구 하나 지키는 사람도 없었고 그냥 공원에 놀러온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슴 무리 가까이 가서 구경할 수도 있었다.




아일랜드 하면 초록색과 아름다운 자연이 대표적인 상징이라 하지만 정말 수도인 더블린에 있는 공원에서 살아있는 자연을 만날 줄이야..!

정말 자유롭게 풀 뜯으며 움직이는 사슴을 처음 본 나는 홀린 듯 사슴 떼를 구경했다.

털이 아주 탐스럽고 예쁜 사슴들이 평화롭게 놀고 있었다.






지난 포스트에서도 언급했듯이 아일랜드 답지 않게 유난히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 덕분인지 사슴들도 나른하고 여유있게 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평소에 많이 보기 때문인지 가까이 다가가도 무념무상이었다ㅋㅋㅋㅋ




드넓은 초원 주위로 나무들이 울타리처럼 둘러져있고 바로 위엔 끝없이 펼쳐진 하늘이 가까이 있었다.

가지각색 사슴들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이곳은 마치 지상 낙원 같았다.





공원의 한쪽에 언덕 위에 거대한 십자가가 우뚝 서있었다.

이때는 그냥 피닉스파크에 대한 정보에 대해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방문한 거라 저 십자가가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해서 그냥 신기하고 의하하고 동시에 무섭기도 했다.

마치 커다란 무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십자가가 있는 언덕과 그 주위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놀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쪽으로 갔다.

나중에 찾아보니 저 십자가는 '교황의 십자가'로 1979년에 테러 위협에도 불구하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아일랜드에서 미사를 했던 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세웠다고 한다. 




이건 내가 서 있던 자리에서 십자가를 등지고 찍은 사진

잔디밭이 정말정말 끝없이 펼쳐져 있다.

저기 사진에 보이는 나무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한~~참을 가야 하는데, 정말 놀라운 점은 여기 이 공원은 피닉스파크의 일부라는 점이다. 하하. 피닉스 파크 안에는 '더블린 동물원'도 위치해 있는데 나는 거기는 방문해보지 못했다.




한참을 걸어 십자가가 있는 언덕 위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따뜻한 볕을 쐬며 앉아있으니 광합성을 하는 기분이었다.

잠시 바람을 느끼며 책을 읽어보려 했으나...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오래 앉아있을 수 없었다 ㅋㅋㅋ

1년 365일 중 300일 가량이 흐리거나 비가 온다는 아일랜드는 이상하게 나에게 말도 안 되게 좋은 날씨들을 보여주었다.




이 사진은 십자가의 아랫 부분이다.

누군가가 이곳에 꽃을 걸어두었다.




그리고 십자가는 정말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더블린은 신기하게도 건물들의 높이가 한국에 비해 매우 낮아서 어디서든 하늘이 잘 보이는데, 더블린 시내에 있는 스파이어와 여기 피닉스 파크의 교황의 십자가처럼 말도 안되게 높게 솟은 건축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스파이어와 십자가 모두 정말 뜬금 없이 끝도 없이 우뚝 솟아 있다.

아이리쉬만의 독특한 취향인가ㅋㅋㅋㅋㅋㅋ어쨌든 심플하면서도 강렬하고 곧은 느낌이 좋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언덕을 한바퀴 돌아 보았다.

사람들이 잔디밭에 앉거나 누워서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언덕 아래 잔디밭에서 축구 연습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사진엔 나오지 않았지만 어린 아이들도 많았는데 모두 언덕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놀고 있었다.

우리나라 엄마들 같았으면 아이들이 바닥에서 구르기 시작할 때부터 옷 더러워진다고 말렸을텐데 이곳에서는 아이들 옷이 흙투성이가 되어도 개의치 않는 것이 신기했다. (공원 뿐 아니라 쇼핑센터 같이 사람들이 많이 밟고 다니는 바닥에서 아이가 뒹굴거려도 그냥 두더라..!)




여기는 언덕의 다른 편..

이렇게 드넓은 초원이 어떻게 그냥 '공원'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거듭 말하지만 이곳 역시 공원의 일부일 뿐..)

아일랜드도 우리나라 못지 않게 작은 나라이지만 이렇게 넓게 펼쳐진 땅을 그냥 그대로 둔다는 게 빽빽한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는 놀라웠다.

우리나라였다면 분명히 뭐라도 만들고, 하다못해 편의점이라도 세워두거나 산책로를 조성하거나 아무튼 뭐라도 설치하고 꾸며두었을텐데 그냥 사람이든 사슴이든 누구든 자유롭게 거닐고 뛰어 놀 수 있도록 이 넓은 공간을 그대로 두는 이 나라 사람들이 참 여유로워 보였다. (이방인의 시각이라 그런 걸 수도 있다)




아이랑 놀아주는 아빠도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 공원에서도 볼 수 있지만, 피닉스 파크 뿐만이 아니라 더블린 시내의 스티븐스 그린에서도 평일 점심에 양복 입고 유모차를 끌고 오는 남자들이나, 부인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 놀아주는 아버지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내가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고작 6개월 동안 머물면서 본 아일랜드의 모습은 물론 단편적인 것이겠지만, 일을 구하던 중 다단계 회사에 들어갈 뻔 했을 때 멋모르고 전기와 가스를 방문판매하는 매니저를 따라다니면서 아일랜드의 일반 가정집에 방문해본 적이 있다.

하루 종일 여러 집의 문을 두들기며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놀랐던 점은 평일 오후 4시~5시 정도의 이른 시간에도 남자들이 가족과 식사준비를 하며 집에 있는 모습이었다. 

어떤 아저씨는 이미 술을 한잔 해서 얼굴이 발갛게 변한 채로 가족들이랑 식사 중이라며 정중하게 방문을 거절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들을 통해 이곳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무척 가정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 다단계 회사는 하루의 트라이얼을 끝에 채용되었지만 내가 다단계임을 깨닫고 다음날 아침에 바로 거절 연락을 해서 다행히 이 정도의 경험으로 그칠 수 있었다. 혹시 아일랜드에서 일(아르바이트)을 구한다면 세일즈 회사를 조심하자...)




우연히 발견해 즐거운 마음으로 점심을 먹었던 메모리얼 가든(지난 포스트 참고)과 압도적인 넓이에 깜짝 놀랐던 피닉스파크까지!

걷고 또 걸었지만 눈이 즐거워 하나도 피곤한 줄 몰랐던 주말 나들이였다.




이 노란 꽃은 피닉스 파크 뿐 아니라 아일랜드 곳곳에 피는 꽃 같다.

더블린에 위치한 바닷가인 호쓰에도 이 꽃과 비슷한 노란 꽃들이 가득 피어있다고 한다.(내가 호쓰에 갔을 땐 꽃이 별로 없었다)




한참 앉아 있다가, 책도 읽다가, 낮잠도 좀 자다가 슬슬 일어나서 걸어 내려왔다.




공원의 다른 부분도 걸어볼까 하고 걷다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있는 거리를 깨닫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초원을 지나 길을 따라 내려간 뒤 평범하게 보이는 공원을 따라 내려가면 끝에 내가 들어온 입구가 있었다.

이 사진은 그냥 중간에 있는 길이다.




괜히 유러피안 씨티에 있는 가장 큰 공원이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2013년 9월, 여전히 나는 일을 구하는 불안정한 신세였지만 이 아름다운 주말에 여유를 한껏 느끼고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한 주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주에 나는 다단계에 들어갈뻔 한 위기(위에 언급)를 지나 운 좋게 바로 다음날 리피밸리 쇼핑센터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면접을 보고 거기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해외 생활에서는 운이 정말 중요하다던데, 정말인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엔 딱 적당한 시기에 일이 구해진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정말 일을 빨리 구한 거라고 입을 모아 말해주었다. 

아일랜드에 온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아 일을 구하다니, 정말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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