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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의 여행/13-14 나홀로 유럽



2013년 9월 말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고 한달이 채 안 되어 일자리를 구했다!

집을 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경사라 무척 기뻤다.

3일간 트라이얼을 받고, 4일을 쉬고 그 다음 주말에 첫 출근이었다.


갑자기 4일의 자유시간을 받게 되었을 때, 런던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저가항공사인 라이언에어를 이용하면, 아일랜드에서 런던까지 아주 저렴하게 갈 수 있다.

나는 코앞에 닥쳐서 예매를 했기 때문에 한화로 약 10만원 정도로 왕복 티켓을 끊었다.

(다른 사람들은 일찍 예매하는 경우 왕복 3만원으로도 갔다온 사례가 있었다)


이렇게,

아일랜드에서 지내는 동안의 첫 유럽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런던 STANSTED 공항에 도착해서 테라비전이라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갔다.

워낙 아침 일찍 아일랜드에서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런던에 도착했을 때에도 여전히 아침이었다.









런던 시내에 도착했을 때 처음 보인 풍경!!

런던 여행을 마치고 아일랜드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돌아갈 때에도, 

역시 이 장소에서 버스를 타고 갔다.









그리고 이 곳에서 기차인지 뭐시긴지를 타고 런던 여행을 시작했다.

런던 하면 떠오르는 빨간색이 반겨주었다 :)








런던의 명물 지하철(언더그라운드)

우리나라와 다르게 원형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튜브라고도 부르는 건가?! 






지하철 역마다 특색있는 무늬와 모양으로 벽면이 꾸며져 있었다!!

런던이 처음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신기했음 >_<








지하철 밖으로 나왔을 때에도 몹시 영국적인 풍경이 나를 반겨줘다.

빨간색 공중전화 박스와, 빨간 이층 버스, 고풍스러운 건물들!! 









첫 구경은 내셔널갤러리!

여기선 카메라를 쓰지 않았다 :-)







내셔널갤러리 주변에 있는 런던패스 오피스에서 런던패스를 받았다!

사실 후에 다른 나라 여행을 할 때에는 베네치아 빼고는 굳이 도시패스를 쓰지 않았는데..

이때는 첫 해외여행인데다가 준비 기간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간편하게 런던패스를 구매했다.







내셔널갤러리 앞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있는데,

분수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귀여운 아이들의 뒷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낯선 곳인 것도 잊고 한참 바라보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몇몇 아이들이 분수대에 모여있자 곧이어 너도나도 달려들어서

물장난으르 하며 놀았다. 귀요미들!









그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런던의 코벤트가든이라는 시장이었다!

아일랜드의 친구에게 영국여행가이드북을 빌렸을 때 이곳이 나와있어서 여기도 와보았다.









이렇게 멋진 그림들을 파는 아저씨도 있었다.

그때 내가 좀더 여유가 있었다면 그림을 몇장 사왔을텐데!!

이때는 아직 월급을 받기 전, 마지막 생활비와 신용카드를 써서 여행을 간 것이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런던 어딜 가도 사고 싶은 예쁜 물건들이 많아서, 결국은 기념품 값이 많이 들긴 했다 ㅋㅋ 내가 빨간색을 좋아해서 더 예뻐보였나부다)








시장의 내부를 천천히 걸으며 구경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시장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북적였지만, 우리나라처럼 빠른 발걸음이 아니라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구경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점심을 먹고 바로 온 거라 배가 부른 상태였기 때문에,

여러 음식 중에 처음 보면서도 가볍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이 녀석을 골라 먹어봤다.

따끈따끈한게 맛도 좋았다 :-)










코벤트가든을 천천히 돌며 구경한 뒤, 나는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짧은 여행이었기에 런던에서의 하루하루를 아주 꽉 차게, 알차게 보냈다!







(다음 포스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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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의 여행/13-14 나홀로 아일랜드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3주차! 2013년 9월의 어느 금요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강아지 사라가 내 방 침대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어서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낮에 열심히 이력서를 돌린 뒤 이른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주말에는 집주인 아들이 추천해준 더블린의 명소 '피닉스파크'로 혼자 나들이를 가려고 도시락 재료를 사러 나갔다.

더블린 구경을 하고 싶은데, 어디가 좋을지 몰라서 제이콥에게 물어보니 유럽 도시에 있는 공원 중 가장 규모가 큰 공원이라면서 '피닉스파크'를 추천해줬다.

동네에 집에서 5분 거리에 큰 마트가 두개 있었지만, 예전에 한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을 때 보았던 '슈퍼퀸'이 생각나서 거기까지 산책삼아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동네 아이들을 만났는데 정말 흥이 넘치는 아이들이었다ㅋㅋㅋㅋㅋ





길을 걷는데 붉은 벽돌 담장에 하얀 분필로 쓴 글씨가 보였다.





괜히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져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채 걸었다.





그리고 드디어 슈퍼퀸에 도착!!!

저 입구로 들어가 아래로 내려가면 넓은 매장이 나온다.

나중에 전해들은 바로는 다른 대형마트에 비해 가격이 조금 비싸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각종 샐러드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이날 이후로도 종종 이곳으로 장을 보러오곤 했다. 





아일랜드는 9월인데도 해가 참 빨리 졌다.

장을 보고 나오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드디어 주말!!

들뜬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서 피닉스파크로 향했다.

사실 이때만해도 구글 지도에 아일랜드 길찾기를 하면 대중교통 정보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였다.

그래서 피닉스파크의 위치를 구글지도로 대강 확인하고, 대~략 근처로 가는 버스를 탄 뒤 GPS를 켜놓고 최대한 가까이 갔을 때 내렸다!!!!

하지만 지도상으로만 봐도 내가 내린 곳에서 피닉스파크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는 족히 가야할 것 같았다ㅋㅋㅋㅋㅋ

더군다나 내린 곳이 담장으로 둘러싸인 차도여서 '어떻게 저쪽으로 건너가야 할까' 고민하던 중 담장 중간에 난 문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메모리얼 가든'이라고 쓰여있었다.





그리고 정원 안쪽으로 들어갔더니!!!!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넓은 정원에 가운데 연못을 둘러싸고 온톤 장미꽃이 펼쳐져있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신의 정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노랑, 분홍, 주황, 빨강... 온갖 색깔의 장미가 눈을 즐겁게 했다.

사실은 '피닉스파크'로 가던 중 길을 잃었던건데, 우연히 정말 멋진 장소를 발견한 것이다!





이날도 역시 1년 내내 비가 오는 아일랜드답지 않게 맑고 화창한 날씨였다.

한낮의 햇볕이 정원 위로 쏟아졌다.






천천히 정원을 한바퀴 돌면서 바닥에 떨어진 꽃잎 하나를 주워들었다.

아무도 밟지 않아 보송보송하고 맨들맨들한 꽃잎이었다.

흔히 보던 빨간 장미가 아니라 더 예쁘게 느껴졌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 정원을 발견한 것처럼 두근두근 했다.





장미 정원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아 꽃을 바라보면서 도시락을 먹었다.

비록 길 잃은 신세였지만 걱정은커녕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메모리얼 가든 안에는 장미 정원 말고도 넓은 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더블린 중심에 있는 스티븐스 그린보다 더 넓게 느껴졌다.

이곳도 이렇게 넓은데, 피닉스파크는 얼마다 더 넓다는 걸까?

정신을 차리고 다시 구글 지도와 GPS를 켰다.




분수대 가장자리에 쪼끄만 강아지가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며 뛰어 놀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이곳이 천국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토록 평화롭고 따사롭고 아름답다니!!!





지도를 보며 걷다보니 작은 샛문이 나왔다.

과연 저곳으로 들어가도 될까 싶었는데, 산책하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다니길래 나도 막 들어갔다.





공원 옆으로 흐르는 작은 강에서 사람들이 이상한 걸 타고 있었다.

아무리 풀이 우거졌어도 이곳은 더블린, 나름 한 나라의 수도인 큰 도시인데 사람들이 저런 레저스포츠를 즐기다니 문화충격이었다ㅋㅋ

이때는 몰랐는데 저기 4번째에 타고 있는 사람 머리를 보니 어쩌면 내가 살았던 루칸 집에 이 시기보다 2달정도 나중에 이사왔던 이탈리아 중딩 로잘라가 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주말 로잘라와 현관 앞에서 만나서 어디가냐고 물었을 때 운동하러 간다고 해서 무슨 운동 하냐고 했더니 카누 같은거 배운다고 했었는데...!

저 헤어스타일은 그 로잘라와 몹시 비슷하다ㅋㅋㅋㅋㅋ





산책로는 끝없이 이어졌다.

구글지도를 보면 나는 피닉스파크 쪽으로 잘 가고 있는게 맞았지만, 나는 과연 이 길을 끝까지 가도 될지 의문이 들었다.

지도를 보면 분명 이 강을 건너가야 하는데 사진으로도 보이듯이 도대체 언제쯤 건널 수 있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걸어온 길을 되돌아 가야하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걷던 중 다행히 다리가 나왔다!

정말 천만 다행!!!

다리 옆쪽에는 사람 사는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었다.





그렇게 조금 더 마을을 지나 걸어올라갔더니 드디어 피닉스파크의 입구가 나왔다!

머나먼 여정이었다ㅋㅋㅋ


사슴이 뛰노는 피닉스파크의 모습은 다음 포스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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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의 여행/13-14 나홀로 아일랜드



2013년 9월 아일랜드 생활 셋째 주, 어김없이 맑은 하늘이 나를 반겨줬다.

1년 중 대부분이 비 오거나 흐린 날이라는 아일랜드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더블린에서 가장 좋아하는 '스티븐스 그린'도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참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아직 나는 호스텔의 도미토미룸, 작은 침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내가 살 집은 도착한 첫주에 구했지만, 그 집의 사정으로 입주일이 늦어진 것이다.

처음에 멋모르고 호스텔 일주일 예약확인서만 가지고 무작정 더블린으로 온 나는 입주 전까지 호스텔방 세군데를 옮겨다녀야 했다.

매일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또 다시 여행을 떠나며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호스텔에서 3주 가까이 지내면서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커졌다. 





그리고 드디어 이사 간 내 방!!

원래 가정집이었는데 부부가 이혼하는 바람에 부인과 딸이 따로 살게 되어서 빈 방이 생겼고, 딸이 살던 핑크빛 방에 내가 첫 세입자로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비록 한국의 내 방의 1/2 밖에 안 되는 크기였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기에 이 방이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한국에서 늘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내가 독립적으로 나만의 공간을 가졌다는 건 나에게 큰 의미였다. 

너무 행복했다.

주인 아저씨가 챙겨준 호피무늬 담요와 내 머플러 무늬가 기가막히게 맞아서 역시 이곳에 온건 운명적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포스트에서는 집의 전면(나무로 다 가려졌지만)을 찍어서 올렸었는데, 그때 말했던 것처럼 2층에 올라가면 있는 방 3개 중에 복도 끝 방이 내 방이었다.

방문에 붙어있는 알파벳은 원래 이 방에 살던 주인아저씨 딸래미 이름이다. 하하.

원래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아저씨와 아들이 둘이 대화할 땐 폴란드 어를 써서 다른나라 말인가? 싶었음) 나중에 딸래미가 놀러왔을 때 서로 부르는 이름을 듣고 알게 되었다.

나는 비록 작은 방 하나를 빌린 것뿐이지만 집 안의 모든 공용 공간(화장실, 부엌, 거실, TV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오예!!!


 



저기 계단 끝에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강아지는 이 집에서 원래 키우던 '사라'.

주인 아저씨는 원하면 강아지 '사라'와도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이 집을 처음 보러 오던 날 그린에어리어에서 혼자 놀고 있던 사라를 처음 만났다.

처음엔 경치도 좋고, 예쁜 잔디밭에 강아지가 혼자 놀고 있는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서 그냥 이 집 강아지인지도 모르고 사진찍으며 구경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이 집을 보고 있던 중에 사라가 들어와서 깜짝 놀랐더랬다.

역시 운명이 아닐 수 없다ㅋㅋㅋ





드디어 안정적인 내 공간, 집이 생겼으니 더욱 분발해서 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집은 루칸에 있었지만 동네에 마땅한 가게들이 별로 없어서 매일매일 루칸-더블린을 왔다갔다 하며 일을 구했다.

이날도 더블린 시내를 마구 돌아다니며 이력서를 돌린 뒤 집에 돌아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시위대가 지나갔다.




놀라웠던 점은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면서 지나가면 그 뒤로 소수의 경찰이 그냥 뒷짐지고 천천히 따라 걷기만 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도로를 거의 차지하고 있는데도 차들도 그냥 느릿느릿 뒤따라 갈 뿐이었다.

TV에서 우리나라 시위 모습을 볼 때 물대포, 곤봉, 차벽.. 이렇게 무서운 모습들이 많이 나왔어서 그런지 굉장히 색다르게 느껴졌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사라가 꼬리를 흔들며 날 맞아주었다.

원래 강아지를 집에서 키워본적이 없어서, 강아지는 그냥 보는 것만 좋아하고 어떻게 만져야하는 지도 잘 몰랐었는데 사라는 참 순하고 얌전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집 안에서는 용변을 절대 보지 않고 밖에 나와야만 해결하는 아주 똑똑한 강아지였다.


집에서 잠시 쉬면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 있을 때 당시 나에게 아일랜드에 딱 한명 있었던 한국인 친구(더블린 가는 비행기에서 만났던)에게 연락이 왔다.

그 친구가 김치라는 이름의 한식당에서 추석 노래자랑을 연다고 알려주었다.

마침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같이 놀러가보기로 했다.




집 밖을 나와서 다시 버스를 타러 정류장 쪽으로 걷는데 오후여서 해가 기우는 빛이 너무 예뻤다.

매일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지고 참 좋았던 동네다.

처음에 집을 보러 올 때 집을 보기도 전부터 이 동네를 보고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었다.




여기가 사라를 처음 만났던 그린 에어리어!

저녁이 가까워져 해가 조금씩 넘어가고 있었다.

사진엔 안 보이지만 이 그린에어리어 주위를 가정집들이 둘러싸고 있다.

평화롭고 한적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따뜻한 동네!

버스타고 15분~20분만 가면 수도 더블린 시내에 도착할만큼 가까웠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여기서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라디오 Sunshine 106.8 (Mellow Moments)를 즐겨들었는데, 정말 이 채널의 음악들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동네였다.

마음에 드는 풍경을 보면서 걸으니,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기분이 더 들뜨게 되었다.




그리고 추석 노래자랑이 열리는 김치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사실 우리나라 못지 않게 술을 좋아하는 아일랜드는 밤늦게까지 템플바 쪽에서 술과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연고나 어학원 없이 단돈 230만원만 들고 왔기 때문에 집과 일을 구하는 등 정착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래서 아침에 나가서 이른 저녁에 들어와 저녁을 먹고, 쉬면서 또 이력서를 보내고(온라인) 일찍 잠이드는 규칙적인 생활을 반복했었다.

사실 이날의 밤 나들이는 이사 후 첫 나들이이면서 동시에 아일랜드에서의 첫 밤 나들이라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 사람과 만나 대화할 일이 없으니 아침에 문득 흥얼거리는 내 노랫소리에 '오랜만의 한국어다!'라고 스스로 깜짝 놀라고 낯설게 느낄 정도로 사람을 만날 일이 없었다 ㅠㅠ 

그래서 한국인들이 모인다는 이 행사가 더 궁금하고 신기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나는 군중 속 소외를 느끼고 돌아왔다.

레스토랑 겸 펍이었던 이곳에는 정말 앞도 잘 보이지 않고,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차있었다.

나는 3주동안 아일랜드에서 지내면서, 아일랜드에 이렇게나 많은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지 이때 처음 알았다.

처음엔 무척 반갑고 신이 났었다!

내 단 하나뿐인 한국 친구와도 만나 맥주 한잔씩 손에 들고 들어가, 그 친구의 친구들에게도 반갑게 인사했다.

그 친구는 어학원도 다니고, 한인 동아리도 참여해서 아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인사해도 사람들은 딱히 반가워 하지도, 웃지도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같은 어학원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끼리끼리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다들 무척 친하고 신나보였지만 끼리끼리 놀고 있을 뿐이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라 두근두근 했던 건 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다들 원래 알던 친구들과 놀기 바빴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노래 잘 들었다고 칭찬도 하고 인사 해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으로 아일랜드에서 아무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내 처지가 뼈저리게 실감이 났다.

이상했다.

아무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얽매여있지 않은) 상태에서 나 스스로만 책임지면 되는 상태로 나를 내던져보고 싶어서 무작정 아일랜드로 온 것이었는데, 소속이 없음을 실감하게 되니 더욱 강렬하게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처음으로 해외에서 맞는 추석, 이날 밤 행사에 나는 꽤 오랜시간 머물러 사람들의 노래를 듣고 이토록 많은 한국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막차 시간이 거의 가까워졌을 때 빠져나왔다.

보통 더블린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어디든 30~40분 이내에 걸어갈만 한 거리이기 때문에 늦게까지 놀아도 상관이 없지만, 나는 더블린 주의 루칸이라는 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에 항상 차가 끊기기 전에 돌아가야 했다.





무언가 가슴 한 구석에 동공이 생긴 듯한 허전함을 안고 터벅터벅 밤 거리를 걸었다.

휘영청 밝은 달이 뜬 추석, 더블린 시내는 달이 무색할 정도로 눈부셨다.

어쨌든 그 발디딜틈 없던 곳을 빠져나오니 한결 마음이 안정 되었다.

예쁜 더블린의 모습과 리피강을 보며 걸으니 기분전환이 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스트레인저이지만, 아까 느꼈던 군중 속의 소외보다는 차라리 모두가 낯설고 내가 스트레인저인게 당연한 상황이 더 편하게 느껴졌다.

이날의 경험은 나에게 아주 좋은 자극이 되었다.

내 방이 생겼다는 기쁨에 잠시 마음이 느긋해지려 했던 나는 이날 이후로 내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루빨리 일을 구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에게도 매일 같이 출퇴근 할 곳과, 함께 일할 동료가 생기기를 바랐다.

저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오래 지나지 않아 나에게도 멋진 동료와 친구들이 생기게 된다.

역시 인생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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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의 여행/13-14 나홀로 아일랜드



2013년 9월 아일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이후 내가 더블린에서 가장 좋아하게 된 곳은 바로 스티븐스 그린!

도심 한복판에 있는 공원인데도 넓고 한적하고 아름다워서 자꾸자꾸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오고 싶은 곳이다.





한국에서 서울과-경기도를 오가며 생활하던 나에게 공원이란 선유도와 여의도공원, 올림픽 공원 정도..?!

그곳들도 물론 좋지만, 더블린의 스티븐스 그린에서 깜짝 놀랐던 건 청둥오리와 갈매기, 심지어 백조들까지 수없이 노닐고 있었다는 것이다.

스티븐스 그린 옆에는 큰 쇼핑센터와 온갖 호텔들이 줄지어 있을 정도로 번화한 도심 한복판이었지만 공원 안은 놀랄만큼 평화로웠다.





워낙 초록초록 한 것을 좋아하고, 여유롭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걸 즐기는 나는 첫 방문 이후 스티븐스 그린에 완전히 빠지게 되었다.

이날은 더블린 생활 둘째주 주말!

평일엔 열심히 일을 구하러 돌아다녔으니 주말에라도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쉬고 싶어서 느릿느릿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 일 ㅠㅠ 

미친 날씨를 자랑하는 아일랜드 답게 공원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청둥오리 너무 귀여움 ㅠㅠ





갑작스런 비에 오리도 놀라고 갈매기도(맞나??) 놀라고 공원에 산책나온 아이와 어른들도 나무 아래로 비를  피하기 바빴다.

이 사진을 찍고 나도 얼른 카메라가 젖을까 품안에 집어 넣고 우산을 폈다.

초록초록한 풍경 속에서 맞는 비는 바쁜 도시생활에서 비를 만났을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나무 아래 한 자리에서 가만히 서서 빗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냥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비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비가 완전히 그치고 나는 다시 우산을 접고 산책을 시작했다.

비에 젖은 잎들 덕분에 한층 녹음이 짙어진 모습이었다.





조금 걷다보니 잔디 밭에서 놀고 있는 백조가 보였다.

물에서는 우아하기 그지없지만 물 밖에선 뒤뚱뒤뚱 오리처럼 걷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리고 저 새하얀 깃털도 너무 예뻤다.





물속에선 이렇게나 우아한 백조님ㅋㅋㅋ

그냥 이렇게 동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이날 이후로 거의 매일 점심을 싸가지고 스티븐스 그린에 갔다.

일을 구하는 동안엔 아침에 도시락을 싸서 나간 뒤 이력서를 돌리다가 스티븐스 그린에 앉아 점심도 먹고 책도 좀 읽다가 다시 이력서를 돌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일들이 반복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그대로 백조... 저 백조와 비슷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물 위에 한가롭게 떠있는 모습 아래에는 발로 끊임없이 헤엄을쳐야 할테니.. 스티븐스 그린에 앉아 한가롭게 책을 읽고 볕을 쐬며 여유를 즐기는 것 같아 보이는 나도 실은 비맞고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일을 구하고 있는 처지였으니 정말 말 그대로 백조... 허허허





그래도 매일 지친 몸과 불안함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곳은 이곳 뿐이었다.

내사랑 스티븐스 그린♡_♡





백조가 있는 곳을 지나 걷다보면 이렇게 어린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평평한 잔디밭과 놀이터가 나온다.

평소 같았으면 놀이터가 아이들로 가득 차있었을텐데, 이때는 비가 온 직후라서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빗방울 맺힌 잔디밭 위를 총총 뛰어다니는 까치만 놀고 있었다.

놀이터 앞에서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것처럼 까치 뒷꽁무늬를 쫒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놀았다ㅋㅋ





나뭇잎 위에는 송글송글 맺혀있는 빗방울들을 보니 다시금 좀전의 비가 떠올랐다.

멀쩡한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지지 않나, 그리고 또 금새 그치지 않나 더블린의 날씨는 정말 종잡을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햇빛이 들기 시작했다.

넓은 공원은 산책로가 잘 짜여져 있어서 걷는 동안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비온 직후라 사람이 없어 한적한 게 마음에 들었다.




바닥은 온톤 젖었지만 하늘에선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완전히 맑게 갠 이후에는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화창한 날씨가 됐다.

정말 미친 날씨가 아닐 수 없다.





꽃잎에 맺혀있는 물방울이 없으면 마치 온종일 맑았던 것처럼 꽃들이 예쁘게 활짝 피어 빛을 받고 있었다.





좋아진 날씨에 따라 덩달아 기분 좋아진 나는 마치 등산와서 신이난 아저씨처럼 룰루랄라 꽃 사진을 찍어댔다.

사진첩을 보니 웬 꽃을 그렇게 클로즈업 해서 찍었는지ㅋㅋㅋ





계속 서서 산책하느라 다리가 조금 아파져서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미 벤치에 물기는 거의 없었다.

평소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 나에게, 한국에서 친구가 그래도 필요할 거라며 텀블러를 선물로 줬었다.

산책하며 마시려고 숙소에서 따뜻한 차를 텀블러에 담아왔었는데 아직 나온지 오래되지 않아 따뜻한 상태였다.





벤치에 앉은 상태 그대로 정면을 찍은 사진!

드넓은 공원 뒤로 펼쳐진 커다란 하늘이 참 예뻤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스티븐스 그린!!!





이렇게 아일랜드에서 또 한주가 가고 있었다.

난생 처음 해외로 나가 여행도 아니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 했던 나에게 스티븐스 그린은 그 어느 것보다도 위안이 되어 주었다.

낯선 도시였던 더블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생겼다.


2013년 9월 중순, 먀냥 신기하고 새로웠던 더블린에 애정이 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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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의 여행/13-14 나홀로 아일랜드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둘째주 시작!

정말 운좋게 수요일에 도착해서 금요일 밤에 들어갈 방을 확정했으니

이제 ID 카드와 통장을 발급 받고, 일을 본격적으로 구해야 했다.

주말에 미리 영문 이력서(CV)를 작성해두고 둘째주부터 더블린 거리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사진은 더블린 중심에서 본 스파이어!

지난 포스트에서 찍었던 사진보다 훨씬 더 높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에 비해 건물들의 높이가 낮기 때문에 스파이어는 더블린 어느 곳에서나 눈에 띈다. 







이력서를 돌리러 제일 먼저 간 곳은 내가 살게 될 루칸시의 동네 주변이었다.

일을 구하게 된다면 매일 집에서 출퇴근하게 될테니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알아보고 싶었다.


이 사진에 보이는 페이힐은 거의 내가 살던 동내의 상징 같은 곳으로, 레스토랑 겸 펍이었다.

버스 정류장이 여기 바로 앞에 있고, 양쪽으로 대형마트인 리들과 유로스파가 있어서 이 동네에 때 매일 아침저녁으로 지나는 곳이다. 


처음으로 이력서를 내는 것이라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가 매니저를 찾았지만 오늘은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사람 구하냐고 물어보자 직원이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매니저한테 물어보라고 얘기했다. 

우선 이력서를 주고 매니저가 언제 나오냐고 물어봐서 그때 다시 오기로 했다.


여기 페니힐은 나를 두번이나 더 오게 했지만 결국 여기서 일을 구하지는 못했다. ㅠㅠ 







마침 동네에 온 김에 내가 살게 될 집앞까지도 다시 한번 찾아가 길을 익혔다.

여기 대문으로 들어가서 유리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면 있는 작은 방, 저기 저 작은 창문이 내 방이었다.

이 집에 들어가기로 확정은 됐지만, 들어가는 날짜는 열흘~2주 정도로 미뤄졌었다.

원래 이 집엔 한 가족(4명)이 살고 있었는데 이혼을 하게 되어 부인과 딸이 나가서 살게 되고, 그래서 남는 방을 월세를 주는 거였다.

거기에 내가 첫 세입자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4살짜리 딸이 쓰던 방에...!(그래서 핑크 천지, 이전 포스트 참고)


게다가 집주인 아저씨는 폴란드인이었고 고3인 아들은 중학교때까지 호주에서 자란 호주인이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정리도 할겸 알아보기도 할겸 2주간 여행을 갔다 오게 되었고 그래서 내 입주일이 늦춰진 것이다.


나무 때문에 사진에선 집이 잘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방을 구했다는 안도감과 기쁜 마음을 가지고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갔다.







첫번째 이력서를 돌린 페니힐을 시작으로 나는 매일매일 아침에 나가 이력서를 출력해서,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더블린 시내의 모든 거리를 하나하나씩 돌아다니며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 펍, 카페, 스낵바 등 온갖 가게마다 들어가 이력서를 뿌렸다.


CV 받는 중이라고 밖에 써붙여진 가게들도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은 현재 사람을 구하지 않는 가게들이었다.

사람도 필요하지 않은 가게에 대뜸 들어가 매니저를 찾고 내 어필을 하며 생글생글 웃는 것은 두꺼운 철판과 용기가 필요했다.

조금 떨리기도 했지만, '해야 할 일은 그냥 하면 되고 문제는 두려움이다'라는 문구를 되새기며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은 일을 반복했다.

수십장 수백장을 돌려도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자 그때서야 비로소 조금씩 '청년실업'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실감이 났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아직 취업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뉴스에서 청년실업이 문제라고 해도 그게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 막상 나에게 있는 돈이 한정 되어있고, 벌지 않으면 그 돈은 곧 바닥나게 되어있고, 그러면 난 기본적인 생활은 커녕 방세도 내지 못하게 되어 더이상 여기서 살 수 없어진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청년실업이라는 말이 가진 무게를 느끼게 되었다. 


사진에 보이는 젖은 바닥처럼 이력서를 돌리는 동안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시간이 많았다.

거친 날씨를 뚫고 하루에도 수십개의 가게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어쩌다 낮에 간단한 점심을 사가지고 호스텔 방에 돌아가 혼자 먹을 때면

모두들 관광하러 나가 텅빈 대낮의 도미토리 방 작은 침대에 앉아 말 그대로 눈물 젖은 빵을 먹기도 했다.






이력서를 뿌리러 돌아다니면서 놀랐던 점은, 아일랜드의 펍들은 오전~낮부터 열어서 레스토랑 같은 역할도 겸한다는 점이었다.

전 세계 어딜 가나 '아이리쉬 펍'이 있을 정도로 아일랜드의 펍 문화는 독보적이고 유명하다.

펍이라고 하면 술집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우리나라의 보통 술집처럼 늦은 오후나 저녁부터 영업을 시작할 줄 알았는데, 한국인 이상으로 술을 좋아하는 아일랜드에서는 낮부터 펍에서 한잔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대낮에 이력서를 돌리러 들어가도 펍마다 사람이 꽉 차 있었고 얼굴이 벌게진 사람들이 있었다.


어학연수나 유학을 온 한국 학생들은 보통 아일랜드에 오자마자 새로 사귄 친구들과 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나는 아일랜드 생활 초반엔 이력서 돌리러 대낮에 펍에 들어간 경험 밖에 없었다. 





내가 첫 일주일동안 지냈던 호스텔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스페인에서 온 여행자 친구들은 매일 저녁 일찍 돌아와 3~4시간 잠을 자고 다시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놀러나가 새벽에 들어왔고, 아침에 조식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가면 다른 유럽지역에서 온 유학생들이 집을 구하고 싶은데 못 구하고 있다는 등의 정착에 관련한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저렴한 호스텔이어서 젊은 사람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여행을 하러 와서 많이들 묵고 계셨고, 나처럼 그냥 일을 구하며 살기 위해 아일랜드에 와 잠깐 호스텔에 머물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 중에 프레드라는 흑인 친구와 사이프러스에서 온 알리 아저씨랑 친구가 됐다.

알리 아저씨는 사이프러스에서 투잡을 뛰는 요리사였는데 아일랜드에서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온 경우였다.

내가 처음에 호스텔 일주일치만 예약하고 왔는데 10일 가량을 더 머물러야 해서 같은 호스텔의 다른 방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그때 같은 방에서 만난 아저씨이다.

알리 아저씨는 아주 사교성이 좋아서 더블린에 사는 친구도 금방 사귀어 집에도 놀러가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 아저씨는 나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더니, 내가 일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갑자기 자기 친구가 좋은 정보를 줄 수 있다며 같이 가보겠냐고 물었다.

원래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면 안 되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나 겁이 없었고 알리 아저씨가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여서 만난지 1~2시간도 되지 않아서 바로 아저씨를 따라 나갔다. 


아저씨를 따라서 도착한 것은 더블린 시내에 있는 한 작은 PC방이었고, 아저씨의 친구는 그곳에서 일하는 서아시아 사람이었다.

그 친구에게 아저씨가 내 얘기를 말해주자 더블린 '커리어 주'라는 채용 박람회 정보를 주고 사전등록을 도와주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만 만나다니!

해외 생활 할 때에는 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더니, 나는 진짜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맑은 날에 나는 들뜬 마음으로 더블린 커리어주에 참석하러 갔다. 

매일 이력서를 돌리며 거닐던 음식점, 카페가 즐비한 북적북적한 거리가 아니라 그 반대쪽으로(바다 방향) 조금 더 가니까 아주 한적하고 쾌적한 거리가 나왔다. 예쁜 다리들도 있었다. 






원래는 거지 같은 미친 날씨를 자랑하는 아일랜드이지만, 내가 도착한 초반에는 이렇게 멋진 날씨를 선사해주었다.

9월의 따스한 가을 햇볕과 예쁘게 물든 낙엽을 보며 오랜만에 감상에 젖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냥 새로운 곳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렇게 예쁘고 청명한 하늘과 초록초록한 나무들을 보니 그동안 고생하며 지친 마음이 안정되고 힐링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몰랐던 나의 도시 취향을 아일랜드에서 발견했는데, 나는 복잡하고 좁은 골목들이나 빽빽하게 무언가가 들어선 곳보다는 더블린처럼 하늘도 거리도 탁 트여있는 시원시원한 곳에 더 끌렸다. 





여기는 하프모양의 다리!

사람들이 관광을 하고 많이 모이는 중심지에 비해 이곳은 현대적인 건물들이 좀더 많이 있었다.

그래도 건물들의 높이는 모두 고만고만 했기 때문에 이렇게 멋진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게 무척 좋았다.






한창 콧노래를 부르며 걷다보니 더블린 커리어 주가 열리는 건물이 보였다.

건물 디자인부터 뭔가 흥미로웠다ㅋㅋㅋ





앞서 말했듯이 이전에 취업에 대해 별 인식이 없었던 나에게 외국의 채용박람회는 정말 색다른 이벤트였다.

솔직히 나는 아직 대학 졸업도 안 한 상태이고 영어도 유창하게 하지 못하고, 아일랜드도 그냥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온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일을 구하겠다!'는 헛된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아일랜드의 채용시장은 어떻고, 여기는 어떤 기업에서 사람들을 뽑는지, 그리고 혹시나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행사에 참석했다. 





정말 놀랐던 점은 이 행사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는 것이다.

이 사진에서는 다 보이지 않지만 엄청나게 넓은 행사장 내부에는 정말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 생애 첫 채용박람회 방문 경험이었다.





아일랜드가 유럽의 IT 강국이라더니 정말 박람회에 참가한 많은 기업들 중에서도 미디어 관련 기업들이 유독 많이 보였다.

내 전공이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이라서 더 이런 기업들이 눈에 들어온 점도 있지만 정말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들이 참석해서 인재들에게 채용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아일랜드 지사에서 사람을 뽑기도 하고, 아일랜드에서 뽑아서 영국지사에서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절실히 일을 구하는 '을'의 입장이 아니라 그냥 행사를 구경하러 온 관람객의 입장으로 하루를 보냈더니 기분전환도 되고 상쾌했다.


채용박람회의 엄청난 열기를 느끼면서 '아일랜드에서 일을 구하는 것은 나 같은 동양인 여자애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한결 짐을 덜 수 있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기에.. 






2013년 9월, 아일랜드 생활 둘째주

또 한주를 무사히 지내고 있었다.

첫주만큼 모든 게 마냥 새롭고 신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 정면으로 부딪치고 깨져가면서 나름의 맷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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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의 여행/13-14 나홀로 아일랜드



아무 연고도 없이 '일주일 호스텔 예약확인서'과 '두달치 생활비(230만원)'만 달랑 들고 아일랜드로 떠났기에, 도착하면 가장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일랜드에서 지낼 집을 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숙소에 짐을 풀자 마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는 내가 첫 일주일동안 머물렀던 숙소 근처의 사거리! 이 횡단보도를 얼마나 많이 지나다녔는지 모른다.

여기 횡단보도만 건너서 몇 블록 가면 바로 더블린 시내의 중심지 오코넬스트릿이 나온다.


1년 중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이 거의 300일 가까이 된다는 아일랜드지만, 내가 처음 도착했을 때는 햇빛 쨍쨍 화창한 날씨였다.

그래서 나에게 아일랜드는 (아무리 비를 많이 맞고 돌아다녔어도) 처음의 화창하고 맑은 따뜻한 인상이 강하다.







 건물들의 높이가 낮은 더블린의 어디서든 볼 수 있다는 '스파이어'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이 솟아있다. 

친구와 약속을 정할 때 "스파이어 앞에서 만나~"라고 할 정도로 더블린에서 지낸다면 자주 마주치게 되는, 더블린의 상징 같은 존재다.


출국 하루이틀 전 한국에서 미리 'daft.ie'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적절한 가격대의 싱글룸 몇군데를 골라 노트에 적어왔기 때문에, 도착 첫날 3(three) 통신사 매장에서 핸드폰 먼저 개통하고, 맥도날드에 들어가 첫 끼니를 때우며 집주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아마 대뜸 전화해 "daft.ie에서 봤는데, 방 보러 가도 될까요? 저 방 구하는 중이에요~"라고 떠듬떠듬 유창하지 않은 영어 실력으로 말을 하는 동양인 여자애가 신기하기도 했을 것 같다. 실제로 몇 군데에서는 거절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다행히 바로 다음날 집을 보러 오라고 약속을 잡은 집도 있었다.


핸드폰 개통과 방 알아보는 약속 모두 무사히 해내고, 안도의 마음으로 숙소 근처 마트에서 간단한 장을 봐서 들어왔다.

알찬 첫날을 보낸 것 같다.






아일랜드에서의 둘째날!

집 보러 가는 약속이 오후에 있었기 때문에 느즈막히 일어나 마트 구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시간 내로 집을 보러 올 수 있냐는 전화가 왔다.

계산대 앞에 서 있던 나는 그대로 구매한 물건(1.5L 생수병, 빵, 토마토 등...)을 품에 안고 투어리스트 오피스에 뛰어갔다.

당시엔 구글지도에서 아일랜드 대중교통 길찾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주소 하나만 가지고 혼자 집을 보러 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투어리스트 오피스에 주소를 보여주며 어떻게 가야하냐고 물어보자 친절하게 지도를 펼쳐서 정류장 위치와 타야 하는 버스 번호, 내려야 하는 정류장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무사히 (허둥대긴 했지만) 더블린의 이층버스를 처음으로 타볼 수 있었다:)

이층에서 보는 창밖 풍경은 늘 타던 일층에서 보는 모습과 전혀 달랐다.

우선 전면이 탁 트여있어서 시원하고 안정감이 들었다. 






첫번째 집을 우여곡절 끝에 보고 나서(같은 이름이라도 스트릿, 애비뉴 등등 여러 골목들이 있었기 때문에 길을 헤맸다ㅠ) 숙소에 다시 돌아가 무거운 생수병을 갖다 놓고, 다시 나와서 두번째 집을 보러 갔다.

이번에도 투어리스트 오피스에 들러 타야하는 버스 정보를 듣고 버스에 탔는데 운전기사가 정류장 이름을 잘 모른다고 했다.

뒤에서 듣고 있던 다른 승객이 내릴 곳을 알려줘서 겨우 내릴 수 있었다. 


여기는 '루칸'이라는 이름의 도시, 더블린 주 안에 있고 더블린 시와 붙어있다.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근처의 잔디밭(나중에 들으니 이 동네에선 그린에어리어라고 부른다더라)에서 쉬고 있었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 하늘이 탁 트여있는 풍경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동네도 아기자기하게 예쁘고 깨끗해서 집을 보기 전부터 왠지 끌리는 듯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집 주인이 알려준 [번호 - 길이름] 으로 갔는데 그 집은 다른 집이었다. 

핸드폰 배터리는 꺼져서 집주인과 연락을 할 수 없었어서 마침 골목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말을 걸고 있었다.

그때 어느 집에서 한 아이의 어머니인 것처럼 보이는 여자가 나와 거기 스트레인져 뭐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분께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흔쾌히 집 안에 들어와 전화를 쓸 수 있게 해주었고, 집주인과 통화를 해서 정확한 집 주소를 알아낼 수 있었다.

정확한 집 주소는 [번호 - 길이름 GROVE] 였는데, 나는 [번호 - 길이름 AVENUE] 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두번째로 보러간 방은 핑크빛 벽지로 둘러싸인 아기자기한 방이었다.

동네부터 마음에 들었던 상태에서 커튼이 하늘거리는 방을 보니 이곳에서 꼭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핑크색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데 이상하게 끌렸다.

바로 오전에 보고 왔던 집이 약간 지저분하고 오래돼 보여서 더욱 비교가 되기도 했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서 집주인 아저씨가 피자를 구워주었다.

함께 피자를 먹으며 방에서는 얼마동안 지내고 싶은지, 월세를 낼 수 있는 여력이 되는지 등을 물어봐 눈을 반짝이며 강력하게 어필을 했다.

이때 처음 안 건데, 내가 방을 둘러보고 마음에 든다고 해서 계약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이미 나 말고도 그 방을 보러 온 사람이 열명 가까이 된다고 했다.

물론 내 마음에도 들어야 하지만, 집주인의 마음에도 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집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겠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절실한 심정으로 열심히 어필했다.


꼬박 하루를 기다려서 다음 날(셋째날) 밤에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그 방에 들어가서 살아도 된다는 연락이었다.

엄청난 시험에 합격한 것처럼 기뻤다!!

(하지만 그 집 사정 때문에 그 방으로 이사가는 것은 2주 뒤가 되었다...ㅠㅠ)






어쨌든!

방을 구하고 마음에 안정을 찾은 뒤, 아일랜드에서 맞는 첫주말에 비행기에서 만났던 한국 친구(지난 포스트에서 언급)와 더블린 구경을 했다.

그 친구는 어학원을 통해서 왔기 때문에 이미 도착하자마자 더블린 시내 구경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며칠간 내내 이리저리 모르는 거리를 헤매며 뛰어다녔기 때문에 더블린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핸드폰 개통하기, 집 구하기라는 미션을 성공적으로 클리어한 후의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사진은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 여기에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도서관이 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아일랜드를 떠날 때까지 그 도서관은 가보지 못했다... ㅠㅠ 너무 가까운 곳이라서 오히려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나보다..... 한국에 돌아와서 하는 뒤늦은 후회 





한번 투어를 했다고 길을 잘 아는 친구 덕분에 더블린 여기저기를 알차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여기는 스티븐스 그린(St. Stephen's Green Park)이다.

(무료 영어 클래스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 교사가 스티븐스 그린이라고 발음하더라..)


더블린은 바다와 맞닿아있는 도시라서 그런지 갈매기 같은 새들이 무척 많다.

호스텔에서 아침에 끼룩끼룩 새 소리 때문에 깨어날 정도였다.


이 공원에 이때 처음 간 이후로 너무 마음에 들어서, 더블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신구의 조화 찰칵!

더블린에서는 말도 많이 키운다고 한다.

(루칸에 살면서는 종종 도로에서 말 똥을 보기도 했다...)


여기는 물론 시내이기 때문에 관광 목적으로 키우는 말이 대부분이다.

한밤중에 탬플바 근처에서 경찰복 같은걸 입은 사람들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걸 보기도 했다. 허허.






마구마구 돌아다니다가 중국어가 써져있어서 우연히 들어간 아시안 푸드 마켓에 한국 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익숙한 우리나라 제품들 밑에 유로로 가격이 쓰여있어서 묘한 기분과 함께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 있을 땐 한국 음식을 해외에서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막상 나가보니 한인마트나 아시안 마켓이 있으면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가격이 비싸서 그렇지..ㅎㅎ





정처 없이 걷다가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 안에서 오래된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는 곳에 들어갔다.

오래된 장난감, 그림, 장신구 등 다양한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참 분위기가 있어서 천천히 구경을 했다.






언제 지어진 건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짙은 붉은색 외벽의 건물이 웅장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유럽에 있긴 있구나..!





한참을 걸으며 구경하다가 잠시 쉴겸 카페에 들어갔다.

라떼를 시켰는데 아기자기한 라떼아트와 함께 나왔다.

유럽의 IT 강국인 아일랜드 답게 카페 안에서 와이파이도 되고, 인테리어도 예쁘고, 창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낯설어서 모든 게 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때가 2013년, 당시 한달정도 뒤에 런던 여행을 갔었는데 이때만해도 들어가는 카페마다 와이파이가 안 된다고 해서 황당했었다...)





수요일에 도착해서 주말까지...정신없으면서도 설렘과 기쁨, 두근거림이 가득했던 아일랜드에서의 첫주가 지났다.

다른 이들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아일랜드의 첫인상은 모르는 사람도 기꺼이 도와주는 '친절'과 탁트이고 청명한 '하늘', 그리고 이에 걸맞게 깨끗한 도로, 옛 정취와 현대가 공존하는 '조화'였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지만, 어느 것도 두렵지 않았다. 안정감을 주는 도시였다.


이 당시에는 '이 모습이 유럽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아일랜드 더블린이 전형적인 유럽 도시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추측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유럽의 여러 나라, 도시들을 여행하고나니 아일랜드만의 매력과 개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돌아갈 수 었는 상태였기에 아일랜드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2013년 9월, 이렇게 아일랜드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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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의 여행/13-14 나홀로 아일랜드

2013.09.03. 첫 출국

만 스물 셋, 인생 처음 대한민국 밖으로 나갔다.

한번쯤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과 혼자 살아보고 싶은 욕구, 그리고 '젊어서 사서 고생한다던데' 하고 내 한몸 한번 제대로 굴려보고 시험해보기 위해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6개월 생활을 결심했다.












제주도 갈 때 빼고는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고, 항상 부모님과 같은 집에서 함께 살아온 경기도 촌년이었다.

그래서 첫 출국 비행 때에는 창밖 풍경과 얼음결정까지 하나하나 모든 게 새롭고 낯설고 동시에 설렜던 것 같다.

'열살 때부터 학교에서 영어 배워서 수능 치고 학교 갔는데 말 한 마디 못하겠어?' 하는 오만함으로 한국에서 영어 학원도 한번 제대로 안 다니고 떠난 탓에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 나누는 모든 짧은 대화마다 긴장도 했고, 학교에서 배웠던 영어를 머릿속에서 더듬어 당당히 의사표현을 했더니 말이 통하는 것이 신기했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을 타서 베이징, 코펜하겐을 경유하여 아일랜드로 가는 일정이었다.

코펜하겐에서는 밤에 도착하여 아침에 출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시내로 나가 하룻 밤을 보냈다.

사실상 내 인생 처음 발을 딛는 유럽 땅이어서 몹시 두근두근 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밤 시간이었는데도 시내에 도착했을 때는 꽤 밝은 편이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대한 내 첫 이미지는 '쭉쭉 곧게 뻗은' 건물들과 도로, 사람들 그리고 셀수 없이 많은 자전거였다.

사람들이 다들 길쭉길쭉하고 새하얘서 동화속에 나오는 요정들 같았다.

북유럽이라 막연히 우리나라보다 추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날씨는 그렇게 춥지 않았다.

9월이라 그런지 한국의 가을 날씨정도였다.








 숙소에 짐을 풀고, 프론트 직원에게 운하와 인어공주 동상이 어디있는지 어디있는지 물어 지도 한장만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새 밖은  꽤 어두워져있었다.

숙소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걸어서 10분 이내로 갈 수 있었다.

퇴근 길인건지, 운동을 하러 나온 건지 거리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니고 있었다.

걷다보니 운하를 따라 길게 늘어선 알록달록한 건물들과 화려한 불빛이 나왔다.

나는 금새 마음을 사로잡혔다.

비록 경유지였지만, 인생 첫 해외 방문이라니!!

그냥 발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몹시 설레고 행복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달랑 지도한장 든 나는 달리 갈 곳도 몰랐다.

'좀더 밝을 때 왔으면 더 좋았을걸...'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모습도 무척 멋졌기 때문에 흔들거리는 배 근처 아무 곳에나 자리를 잡고 앉아 구경을 했다. 다음 날 새벽같이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어차피 일찍 숙소로 돌아가야했다.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이 풍경을 눈에 오래오래 담아두기 위해 그냥 같은 곳에 혼자 앉아 있었다.

내일이면 내가 당분간 정착해서 살아야 하는 낯선 나라 아일랜드에 도착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다른 아무 생각도 걱정도 들지 않았다.








 완전히 깜깜해졌을 때, 나는 일어나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시간은 아마 11시가 훌쩍 넘었던 것 같다.

나올 때는 자전거와 사람이 많이 지나다녔지만, 들어갈 때는 한적했다.

사실 한국 같았으면 진작에 캄캄해졌어야 했지만, 그래도 나는 더이상 오래 바깥 구경을 하지 못하는게 마냥 아쉬웠다.

코펜하겐에서 보낸 하룻밤은 짧지만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관광지가 아닌 일반 도로를 걷는데도 왠지모를 분위기가 있었다.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지만 밖에서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다.


단돈 230만원(2달치 생활비)만 들고 떠난 것이기 때문에 아일랜드에서 자리를 잡고 6개월 동안 생활해내는 것만으로도 큰 도전이었지만, 이날 코펜하겐에서 보낸 하룻밤은 단순한 생활을 넘어서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고 오고 싶다는 열망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오른쪽에 보이는 마켓은 당시엔 그냥 지나쳐다녔던 곳이지만 6개월 뒤 다시 코펜하겐을 경유할 때에는 마음껏 구경하고 신기한 음식도 맛본 곳이다.

예전 사진을 다시 꺼내보니 이렇게 찍을 당시엔 몰랐던 것들이 보인다.

잠을 오래 자진 못했지만 공기도 기분도 모두 상쾌했다.

모든게 다 처음이다보니 어느 것 하나 설레지 않는 것이 없었고, 동시에 어느 것 하나 겁을 낼 수도 없었다.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냥 해야 했기에, 두려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초록색이 상징인 나라 아일랜드에 착륙할 때가 되자, 비행기 안이 온통 시끌벅적해졌다.

코펜하겐에서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으로 가는 비행기에는 대부분 아이리쉬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비행 내내 수다스럽게 떠들더니 아일랜드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오자 환호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난리 부르스를 췄다.

동양인은 나와 우연히 내 옆에 앉은 한국인, 이렇게 둘 뿐이라 그런 분위기가 얼떨떨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한국인 못지 않게 흥이 가득한 아이리쉬들다운 모습이었다.

비행기에서 내 옆에 앉은 한국인과는 금새 친구가 됐다.

그는 어학원을 통해서 왔지만 나는 아무 것도 통하지 않고 혼자 무작정 온 것이었기 때문에 더블린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그를 만난 건 정말 천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더블린 공항 도착!

비행기에서 만난 친구는 어학원 사람이 마중나와 데리고 갔다.

내가 숙소까지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하자 그 어학원 사람이 나에게 시내로 가는 버스가 있다며 알려주었다.

그 사람의 말을 새겨듣고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가서 내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야하는지 물어봤더니 같은 버스를 추천해줬다.

낯선 나라 아일랜드에서 처음으로 탄 이층버스다.

버스에 타서 앞에 캐리어를 실을 수 있는 자리에 내 캐리어를 넣으려고 낑낑 대자 남녀 할 것 없이 나를 도와주었다.

아일랜드에 대한 첫인상은 참 깨끗하고 친절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예약한 호스텔이 위치한 로워 가디너 스트릿에 내려서 주소 정보만 가지고 호스텔을 찾아갔다.

처음에 신호등이 없는 곳에 내려 길 건너편으로 어떻게 건너야 하는지 망설이는 나에게, 아이리쉬들이 그냥 무단횡단을 하라고 알려줬다.

여기 사진은 주소를 잘못 찾아 한 번지수 전에 잘못 도착해서 기다릴 때 찍은 사진이다.

내가 일주일 예약한 호스텔의 입구는 이 파란대문 바로 왼쪽에 있는 큰 대문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 파란문이 있는 곳도 같은 호스텔 건물이긴 하지만 이 문은 사용하지 않는 문이었다)


이렇게 나는 난생 처음 해외로 떠나 머나먼 나라 아일랜드 더블린에 도착했다. 

여기선 코펜하겐과 달리 마음놓고 구경할 여유가 없었다.

말 그대로 아무런 연고 없이 무작정 떠나온 것이기 때문에 당장 핸드폰 개통부터 해서 daft.ie(부동산 사이트)에서 미리 봐둔 방의 집주인들에게 연락해서 약속을 잡아야했다. 방을 당장 구하지 않으면 갈 곳이 없는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무모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단 나는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모든 게 새로웠지만 새로움에 감탄할 시간이 없었다.

적응할 새도 없이, 나는 자연스럽게 행동부터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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