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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의 여행/13-14 나홀로 아일랜드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3주차! 2013년 9월의 어느 금요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강아지 사라가 내 방 침대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어서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낮에 열심히 이력서를 돌린 뒤 이른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주말에는 집주인 아들이 추천해준 더블린의 명소 '피닉스파크'로 혼자 나들이를 가려고 도시락 재료를 사러 나갔다.

더블린 구경을 하고 싶은데, 어디가 좋을지 몰라서 제이콥에게 물어보니 유럽 도시에 있는 공원 중 가장 규모가 큰 공원이라면서 '피닉스파크'를 추천해줬다.

동네에 집에서 5분 거리에 큰 마트가 두개 있었지만, 예전에 한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을 때 보았던 '슈퍼퀸'이 생각나서 거기까지 산책삼아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동네 아이들을 만났는데 정말 흥이 넘치는 아이들이었다ㅋㅋㅋㅋㅋ





길을 걷는데 붉은 벽돌 담장에 하얀 분필로 쓴 글씨가 보였다.





괜히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져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채 걸었다.





그리고 드디어 슈퍼퀸에 도착!!!

저 입구로 들어가 아래로 내려가면 넓은 매장이 나온다.

나중에 전해들은 바로는 다른 대형마트에 비해 가격이 조금 비싸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각종 샐러드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이날 이후로도 종종 이곳으로 장을 보러오곤 했다. 





아일랜드는 9월인데도 해가 참 빨리 졌다.

장을 보고 나오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드디어 주말!!

들뜬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서 피닉스파크로 향했다.

사실 이때만해도 구글 지도에 아일랜드 길찾기를 하면 대중교통 정보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였다.

그래서 피닉스파크의 위치를 구글지도로 대강 확인하고, 대~략 근처로 가는 버스를 탄 뒤 GPS를 켜놓고 최대한 가까이 갔을 때 내렸다!!!!

하지만 지도상으로만 봐도 내가 내린 곳에서 피닉스파크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는 족히 가야할 것 같았다ㅋㅋㅋㅋㅋ

더군다나 내린 곳이 담장으로 둘러싸인 차도여서 '어떻게 저쪽으로 건너가야 할까' 고민하던 중 담장 중간에 난 문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메모리얼 가든'이라고 쓰여있었다.





그리고 정원 안쪽으로 들어갔더니!!!!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넓은 정원에 가운데 연못을 둘러싸고 온톤 장미꽃이 펼쳐져있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신의 정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노랑, 분홍, 주황, 빨강... 온갖 색깔의 장미가 눈을 즐겁게 했다.

사실은 '피닉스파크'로 가던 중 길을 잃었던건데, 우연히 정말 멋진 장소를 발견한 것이다!





이날도 역시 1년 내내 비가 오는 아일랜드답지 않게 맑고 화창한 날씨였다.

한낮의 햇볕이 정원 위로 쏟아졌다.






천천히 정원을 한바퀴 돌면서 바닥에 떨어진 꽃잎 하나를 주워들었다.

아무도 밟지 않아 보송보송하고 맨들맨들한 꽃잎이었다.

흔히 보던 빨간 장미가 아니라 더 예쁘게 느껴졌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 정원을 발견한 것처럼 두근두근 했다.





장미 정원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아 꽃을 바라보면서 도시락을 먹었다.

비록 길 잃은 신세였지만 걱정은커녕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메모리얼 가든 안에는 장미 정원 말고도 넓은 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더블린 중심에 있는 스티븐스 그린보다 더 넓게 느껴졌다.

이곳도 이렇게 넓은데, 피닉스파크는 얼마다 더 넓다는 걸까?

정신을 차리고 다시 구글 지도와 GPS를 켰다.




분수대 가장자리에 쪼끄만 강아지가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며 뛰어 놀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이곳이 천국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토록 평화롭고 따사롭고 아름답다니!!!





지도를 보며 걷다보니 작은 샛문이 나왔다.

과연 저곳으로 들어가도 될까 싶었는데, 산책하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다니길래 나도 막 들어갔다.





공원 옆으로 흐르는 작은 강에서 사람들이 이상한 걸 타고 있었다.

아무리 풀이 우거졌어도 이곳은 더블린, 나름 한 나라의 수도인 큰 도시인데 사람들이 저런 레저스포츠를 즐기다니 문화충격이었다ㅋㅋ

이때는 몰랐는데 저기 4번째에 타고 있는 사람 머리를 보니 어쩌면 내가 살았던 루칸 집에 이 시기보다 2달정도 나중에 이사왔던 이탈리아 중딩 로잘라가 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주말 로잘라와 현관 앞에서 만나서 어디가냐고 물었을 때 운동하러 간다고 해서 무슨 운동 하냐고 했더니 카누 같은거 배운다고 했었는데...!

저 헤어스타일은 그 로잘라와 몹시 비슷하다ㅋㅋㅋㅋㅋ





산책로는 끝없이 이어졌다.

구글지도를 보면 나는 피닉스파크 쪽으로 잘 가고 있는게 맞았지만, 나는 과연 이 길을 끝까지 가도 될지 의문이 들었다.

지도를 보면 분명 이 강을 건너가야 하는데 사진으로도 보이듯이 도대체 언제쯤 건널 수 있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걸어온 길을 되돌아 가야하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걷던 중 다행히 다리가 나왔다!

정말 천만 다행!!!

다리 옆쪽에는 사람 사는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었다.





그렇게 조금 더 마을을 지나 걸어올라갔더니 드디어 피닉스파크의 입구가 나왔다!

머나먼 여정이었다ㅋㅋㅋ


사슴이 뛰노는 피닉스파크의 모습은 다음 포스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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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의 여행/13-14 나홀로 아일랜드



2013년 9월 아일랜드 생활 셋째 주, 어김없이 맑은 하늘이 나를 반겨줬다.

1년 중 대부분이 비 오거나 흐린 날이라는 아일랜드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더블린에서 가장 좋아하는 '스티븐스 그린'도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참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아직 나는 호스텔의 도미토미룸, 작은 침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내가 살 집은 도착한 첫주에 구했지만, 그 집의 사정으로 입주일이 늦어진 것이다.

처음에 멋모르고 호스텔 일주일 예약확인서만 가지고 무작정 더블린으로 온 나는 입주 전까지 호스텔방 세군데를 옮겨다녀야 했다.

매일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또 다시 여행을 떠나며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호스텔에서 3주 가까이 지내면서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커졌다. 





그리고 드디어 이사 간 내 방!!

원래 가정집이었는데 부부가 이혼하는 바람에 부인과 딸이 따로 살게 되어서 빈 방이 생겼고, 딸이 살던 핑크빛 방에 내가 첫 세입자로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비록 한국의 내 방의 1/2 밖에 안 되는 크기였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기에 이 방이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한국에서 늘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내가 독립적으로 나만의 공간을 가졌다는 건 나에게 큰 의미였다. 

너무 행복했다.

주인 아저씨가 챙겨준 호피무늬 담요와 내 머플러 무늬가 기가막히게 맞아서 역시 이곳에 온건 운명적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포스트에서는 집의 전면(나무로 다 가려졌지만)을 찍어서 올렸었는데, 그때 말했던 것처럼 2층에 올라가면 있는 방 3개 중에 복도 끝 방이 내 방이었다.

방문에 붙어있는 알파벳은 원래 이 방에 살던 주인아저씨 딸래미 이름이다. 하하.

원래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아저씨와 아들이 둘이 대화할 땐 폴란드 어를 써서 다른나라 말인가? 싶었음) 나중에 딸래미가 놀러왔을 때 서로 부르는 이름을 듣고 알게 되었다.

나는 비록 작은 방 하나를 빌린 것뿐이지만 집 안의 모든 공용 공간(화장실, 부엌, 거실, TV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오예!!!


 



저기 계단 끝에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강아지는 이 집에서 원래 키우던 '사라'.

주인 아저씨는 원하면 강아지 '사라'와도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이 집을 처음 보러 오던 날 그린에어리어에서 혼자 놀고 있던 사라를 처음 만났다.

처음엔 경치도 좋고, 예쁜 잔디밭에 강아지가 혼자 놀고 있는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서 그냥 이 집 강아지인지도 모르고 사진찍으며 구경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이 집을 보고 있던 중에 사라가 들어와서 깜짝 놀랐더랬다.

역시 운명이 아닐 수 없다ㅋㅋㅋ





드디어 안정적인 내 공간, 집이 생겼으니 더욱 분발해서 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집은 루칸에 있었지만 동네에 마땅한 가게들이 별로 없어서 매일매일 루칸-더블린을 왔다갔다 하며 일을 구했다.

이날도 더블린 시내를 마구 돌아다니며 이력서를 돌린 뒤 집에 돌아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시위대가 지나갔다.




놀라웠던 점은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면서 지나가면 그 뒤로 소수의 경찰이 그냥 뒷짐지고 천천히 따라 걷기만 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도로를 거의 차지하고 있는데도 차들도 그냥 느릿느릿 뒤따라 갈 뿐이었다.

TV에서 우리나라 시위 모습을 볼 때 물대포, 곤봉, 차벽.. 이렇게 무서운 모습들이 많이 나왔어서 그런지 굉장히 색다르게 느껴졌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사라가 꼬리를 흔들며 날 맞아주었다.

원래 강아지를 집에서 키워본적이 없어서, 강아지는 그냥 보는 것만 좋아하고 어떻게 만져야하는 지도 잘 몰랐었는데 사라는 참 순하고 얌전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집 안에서는 용변을 절대 보지 않고 밖에 나와야만 해결하는 아주 똑똑한 강아지였다.


집에서 잠시 쉬면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 있을 때 당시 나에게 아일랜드에 딱 한명 있었던 한국인 친구(더블린 가는 비행기에서 만났던)에게 연락이 왔다.

그 친구가 김치라는 이름의 한식당에서 추석 노래자랑을 연다고 알려주었다.

마침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같이 놀러가보기로 했다.




집 밖을 나와서 다시 버스를 타러 정류장 쪽으로 걷는데 오후여서 해가 기우는 빛이 너무 예뻤다.

매일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지고 참 좋았던 동네다.

처음에 집을 보러 올 때 집을 보기도 전부터 이 동네를 보고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었다.




여기가 사라를 처음 만났던 그린 에어리어!

저녁이 가까워져 해가 조금씩 넘어가고 있었다.

사진엔 안 보이지만 이 그린에어리어 주위를 가정집들이 둘러싸고 있다.

평화롭고 한적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따뜻한 동네!

버스타고 15분~20분만 가면 수도 더블린 시내에 도착할만큼 가까웠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여기서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라디오 Sunshine 106.8 (Mellow Moments)를 즐겨들었는데, 정말 이 채널의 음악들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동네였다.

마음에 드는 풍경을 보면서 걸으니,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기분이 더 들뜨게 되었다.




그리고 추석 노래자랑이 열리는 김치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사실 우리나라 못지 않게 술을 좋아하는 아일랜드는 밤늦게까지 템플바 쪽에서 술과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연고나 어학원 없이 단돈 230만원만 들고 왔기 때문에 집과 일을 구하는 등 정착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래서 아침에 나가서 이른 저녁에 들어와 저녁을 먹고, 쉬면서 또 이력서를 보내고(온라인) 일찍 잠이드는 규칙적인 생활을 반복했었다.

사실 이날의 밤 나들이는 이사 후 첫 나들이이면서 동시에 아일랜드에서의 첫 밤 나들이라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 사람과 만나 대화할 일이 없으니 아침에 문득 흥얼거리는 내 노랫소리에 '오랜만의 한국어다!'라고 스스로 깜짝 놀라고 낯설게 느낄 정도로 사람을 만날 일이 없었다 ㅠㅠ 

그래서 한국인들이 모인다는 이 행사가 더 궁금하고 신기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나는 군중 속 소외를 느끼고 돌아왔다.

레스토랑 겸 펍이었던 이곳에는 정말 앞도 잘 보이지 않고,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차있었다.

나는 3주동안 아일랜드에서 지내면서, 아일랜드에 이렇게나 많은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지 이때 처음 알았다.

처음엔 무척 반갑고 신이 났었다!

내 단 하나뿐인 한국 친구와도 만나 맥주 한잔씩 손에 들고 들어가, 그 친구의 친구들에게도 반갑게 인사했다.

그 친구는 어학원도 다니고, 한인 동아리도 참여해서 아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인사해도 사람들은 딱히 반가워 하지도, 웃지도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같은 어학원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끼리끼리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다들 무척 친하고 신나보였지만 끼리끼리 놀고 있을 뿐이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라 두근두근 했던 건 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다들 원래 알던 친구들과 놀기 바빴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노래 잘 들었다고 칭찬도 하고 인사 해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으로 아일랜드에서 아무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내 처지가 뼈저리게 실감이 났다.

이상했다.

아무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얽매여있지 않은) 상태에서 나 스스로만 책임지면 되는 상태로 나를 내던져보고 싶어서 무작정 아일랜드로 온 것이었는데, 소속이 없음을 실감하게 되니 더욱 강렬하게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처음으로 해외에서 맞는 추석, 이날 밤 행사에 나는 꽤 오랜시간 머물러 사람들의 노래를 듣고 이토록 많은 한국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막차 시간이 거의 가까워졌을 때 빠져나왔다.

보통 더블린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어디든 30~40분 이내에 걸어갈만 한 거리이기 때문에 늦게까지 놀아도 상관이 없지만, 나는 더블린 주의 루칸이라는 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에 항상 차가 끊기기 전에 돌아가야 했다.





무언가 가슴 한 구석에 동공이 생긴 듯한 허전함을 안고 터벅터벅 밤 거리를 걸었다.

휘영청 밝은 달이 뜬 추석, 더블린 시내는 달이 무색할 정도로 눈부셨다.

어쨌든 그 발디딜틈 없던 곳을 빠져나오니 한결 마음이 안정 되었다.

예쁜 더블린의 모습과 리피강을 보며 걸으니 기분전환이 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스트레인저이지만, 아까 느꼈던 군중 속의 소외보다는 차라리 모두가 낯설고 내가 스트레인저인게 당연한 상황이 더 편하게 느껴졌다.

이날의 경험은 나에게 아주 좋은 자극이 되었다.

내 방이 생겼다는 기쁨에 잠시 마음이 느긋해지려 했던 나는 이날 이후로 내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루빨리 일을 구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에게도 매일 같이 출퇴근 할 곳과, 함께 일할 동료가 생기기를 바랐다.

저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오래 지나지 않아 나에게도 멋진 동료와 친구들이 생기게 된다.

역시 인생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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